김훈동칼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한 나라나 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그 도시의 건축을 이해하라는 말이 있다. 건축이야말로 인류생활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살아있는 기억이면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다. 수원화성은 단순한 성곽의 개념을 넘어 도시 자체를 뜻한다. 당시의 시대정신과 미래비전이 담겨있기에 그렇다.


수원화성 건축이 담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탐색하는 이색 전시회가 시민의 눈을 번득이게 한다. ‘구조의 건축’이라는 이름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기획전이다. 포스터의 글자부터가 참신하다. 현대글자 ‘구조의 건축’ 다섯 글자 위에 화성 현판 9곳에서 집자(集子)해 만든 옛 글자가 덮여 있다. 과거의 건축물을 현대적으로 상상해 본다는 의미다. 수원은 수원화성과 정조대왕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불가분의 관계다. 어찌 보면 도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을 통해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번 전시가 그러한 뜻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수원화성은 수원의 얼굴이다. 동양성곽 건축의 백미(白眉)다. 수원화성은 올해로 축성 222주년을 맞았다. 정조는 “웅려탈기(雄麗奪氣), 고금미제(古今美制)”하라고 했다. 웅장하고 미려함이 적군을 두렵게 하니 고금의 아름다운 것을 화성에 모두 갖추도록 하라는 뜻이다.  또한 정조실록 38권에는 ‘비장려(非壯麗), 무이중위(無以重威)’라는 글귀가 있다.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험을 보일 수 없다는 말이다. 전통적 축성(築城)기법과 동서양의 과학기술을 고루 배합시켜 만들었다. 성곽은 장엄하고 아름답다. 당대의 이상과 현실, 미래 가치가 반영돼 있는 수원화성은 그래서 구조적,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개관한지 2년 반이 지난 아이파크미술관이 무술년 첫 기획전을 꾸민 이유다. 수원화성만이 지닌 미학적 가치를 보여주고 현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수원화성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9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참여해 건축 뒷면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수원화성이 지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동시대적 시선으로 해석해 시민들에게 보여준다. 장안문, 팔달문에서 영감을 받아 LED를 소재로 성벽이 과거에서 미래로 뻗어 나가는 형상에 제례악을 미디어 음악으로 엮어 현대적으로 표현한 작품, 당시 나무로 만든 축성도구인 거중기나 발차(發車)를 현대적 소재로 세련되게 만든 작품, 벽돌로 쌓은 돈대나 성곽을 나무소재로 촘촘하게 만든 작품, 거대한 장막위로 서장대의 고유한 건축형태를 섬세하게 들추어내며 이를 새롭게 환기시킨 작품. 왕의 건축물이지만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든 화성건축 곳곳에 민초들의 실명이 적혀있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켜켜이 쌓여있는 먼지를 소재로 한 작품 등 모두가 관람객들에게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물의 면면들을 새로운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삶의 주변을 부유(浮遊)하는 보잘 것 없는 흔적들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탐구와 충실한 예술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있을 때 상상을 시작한다. 미술관에선 박물관과 달리 끝없는 예술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특히 아이파크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수원화성의 가장 본질적 구축법인 ‘쌓다(stack)’에 주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긴 호흡으로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수원화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군사시설이라는 본래의 기능에서 현재는 아름다운 문화재로써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았다. 기능적 변화에도 돌을 쌓아올린 구축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듯 수원화성 건축에 공존하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불안정과 안정’이라는 감각의 양면성을 예술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이제껏 익숙하게 바라보는 대상에 인식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가치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수원화성이 지닌 미학적 가치를 건축과 시각예술의 시선으로 펼쳐 보인 ‘구조의 건축’ 미술전은 시민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저작권자 © 새수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