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재빨리 몸을 움칫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짓이겨질 거였으면 때를 알고 기다렸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계산으론 일어 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나무가 많아 살기 좋았던 이 집에 조경사들이 들이 닥치며 목장갑을 낀 손으로 마당의 이곳저곳을 분주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내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튀어나온 가지와 무성한 잎이 거침없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구나. 이럴 리가 없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망쳐진 거미줄은 축 쳐진 가는 끈 한 오라기를 힘없이 늘어뜨린 채 바람에 덜그렁덜그렁 그네타기를 하고 있었다. 거미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이끌며 나무꼭대기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당 한구석에 나사가 헐거워진 낡은 바람개비가 힘겹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아침에 거미줄에 걸린 선녀벌레와 날파리를 포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이 희뿌옇게 보였다. 그저 내 방식대로 높은 곳에 기어올라 몸을 던지며 가지마다 엮은 집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비를 맞은 거미집은 비록 끈적임이 약해 먹이가 잘 걸리지 않더라도 바람 따라 달랑거리는 물방울이 참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여유를 부려보곤 했었다.

조경사들은 가지치기뿐만 아니라 해충을 입은 나무들을 뿌리째 뽑기 시작했다. 숱을 다듬거나 톱으로 잘라버리려 하는데 밑동이 남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충이 잘 생기는 나무라고 통째로 뽑아달라는 주인의 요구도 있었다는 거다. 거미는 계수나무 잎사귀 뒤에 숨어서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트 모양의 잎 사이로 파헤쳐진 마당에서 불어오는 흙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 나무마저도 뽑히면 큰일이기에 몸은 바싹 긴장한 탓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어이, 이 나무는 어떻게 할까? 음, 집의 입구에 서있어서 수호목이 되어 좋은데 너무 키가 훌쩍 자라버린 게 흠이라면 흠일까, 풍광은 좋네 그려. 윗가지만 쳐내도 될듯한데 말이야.”

조경사 중 비둘기 색 모자를 쓰고 흰 수건을 아무렇게 목에 걸친 남자가 말을 건넸다.

큰일 났구나. 빨리 옆 나무로 이동을 해야겠는데. 거미는 두려움에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 하였다. “곧 주인이 온다는데 물어보고 자르세, 아직 흉측한 모양새는 아니네 그려, 배도 고프고 좀 쉬었다 하지” 말랐지만 큰 눈이 서글서글해 보이는 다른 조경사가 답을 한다.

거미는 뒷 꽁무니를 내민 채 실을 뽑아 이동하려던 참에 일단 제자리에 머무르기로 했다.

저 너머로 동네 아이들이 소리치며 몰려오는 소리가 났다. 서로의 것이 더 높이 난다며 드론이라는 것을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부웅붕 쉴 새 없이 머리위에서 맴을 도는데 소음도 소음이지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잔잔히 비가 내려 얽힌 감정을 가다듬을 수 있어 좋았던 어느 날, 바삭한 햇빛이 꽃향기를 퍼뜨려줘 행복했던 어느 날, 쿵쾅거리는 천둥소리에 며칠 동안 몸을 사렸던 어느 날, 애써 만들어 놓은 집이 세찬 바람에 망가져 하염없이 울었던 어느 날, 검은 눈을 굴리며 지은 집이 너무 멋져서 기쁘고 자랑스러웠던 어느 날 등. 뭐니 뭐니 해도 이렇게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음이 그저 감사하고 감사 할 뿐 이었다

아이들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늘 그랬듯이 순간순간의 두려움도 흐르는 시간과 함께 무뎌져 버리고 또 다른 시간으로 재빨리 채워져 갔다.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갑자기 힘이 빠지며 졸음이 몰려와 잠을 청해보기로 한다. 폭풍같이 지나간 변화에 잠시 등을 돌리고 시간을 묶어보기로 한다. 멈추지 않는 시간을 이기려하지 않겠다. 시간을 빌리기로만 한다. 닥쳐올 숙명에 나약한 몸뚱이로 견뎌 내려면 지금은 쉬어야한다.

초여름의 다소 습한 바람이 마당 안으로 달음질해 들어온다. 한켠에선 배달되어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느라 조경사들의 젓가락질이 바쁘다. 이 때 허스키한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언뜻언뜻 들렸다.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눈을 뜨지 않으면, 휴식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이 닥쳐도 내 탓이고 기회가 없다는 걸 거미는 잘 알고 있었다.

"맞아요. 너무 방치해 놓다보니 나무가 웃자랐네요. 아담하게 전지 좀 부탁드려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빨리 실을 뽑자. 서두르자. 그러나 침착하게. 거미는 정신을 곧게 세웠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실을 걸을만한 마땅한 나무가 없는지 재빨리 파악한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저 아래 키 작은 앵두나무가 만만하게 보였다. 잔잎만 무성해서 먹이를 걸리게 할 집은 못 지어도 당장 몸을 피하기엔 그만 이었다. 더구나 이미 가지치기를 마친 후라 더 건드릴 이유도 없었다. 거미는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힘껏 실을 던졌다. 하지만 지나가는 조경사 팔에 걸려 피시식 힘없이 줄은 끊어지고 말았다. 이번엔 놓치지 않기로 맘을 먹고 좀 더 앞으로 이동을 하며 실을 날렸다. 세로로 날린 실은 목표한 곳에 잘 걸렸다. 줄을 따라 급히 내려가 본다. 사람들이 지나가기 전에 성급히 기어간다. 머릿속이 흰 광목천처럼 빳빳해지고 창백해지도록 상황은 다급하다. 노출이라도 되면 끝장이구나 싶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쪼그라진 긴장감으로 실이 출렁거렸다.

곡예 실타기는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찬 맛과 뜨거운 맛을 번갈아 맛보며 거미의 삶은 굵어지고 지혜가 생겨났다. 정원이 점점 제 모습으로 단장 되어갈 무렵, 거미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긴장이 다소 사라지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포획과 공격에 집중 해 본적이 꽤 오래전의 일 인 듯 생소하다. 먹구름이 걷히면 푸른 하늘을 바라 볼 수 있음을 알아버린 후였다.

주어진 생을 빈 병 버리듯 하기엔 아직 꽁지만한 희망이 남아있기에 그래도 버둥거리며 살아보려 한다. 단단히 여물은 낟알처럼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모질게 버텨 보려 한다.

거미의 눈이 그 순간 반짝 거렸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라 모든 것이 더욱 새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미는 또다시 분주히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느 날이, 그리고 모든 날을 늘 그래왔듯이. 세로로, 가로로, 쉴 새 없이 실을 내뿜고 있었다.

더 크게, 더 멋지게, 더 튼튼하게.


박혜선 수필가
박혜선 수필가

 

약력

<한국문인> 시, <한국수필> 수필 등단 2015년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수필분과 차장.

수원문학인상, 문학과비평 작가상, 경기수필 작품상.

시집 [그대 마음의 소리]

수필집 [사람 집 그리고 길, 한국수필대표선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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