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며 상상력이 풍부한 전략가”... 내가 그렇다고?? 얼마 전 심심풀이로 해본 MBTI*라는 검사가 내 성격이 그렇다고 알려준다. 결과에 의하면 나의 성격유형은 INTJ-T이다. 친절하게도 이 검사는 나와 잘 어울리는 성격과 정반대인 성격유형까지도 안내해준다. 이제부터 사람을 만나면 성격유형이 어떻게 되는지부터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저와 잘 어울리는 성격유형이라니 반갑습니다. 죄송하지만 저와는 성격이 상극이라니 만나지 맙시다. 이래야 하나? 하긴 예전에도 과학적 근거나 신뢰성이 빈약한 ABO 혈액형으로 성격을 넘겨짚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결혼 적령기였던 8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중매쟁이는 꼭 남녀의 혈액형을 먼저 물어보았다. 특정 혈액형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상대의 믿음 때문에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만남이 불발되는 경우도 많았다. 혈액형의 성격유형은 A-B-O-AB, 단 4가지이다. 태어난 곳도 자라온 환경도 서로 다른 사람들을 혈액형 하나로 넷으로 나누어 동일 성격으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데 당시에는 당연시 받아들였다. 이에 비하면 MBTI는 성격유형을 16가지로 세분화해서인지 검사 결과에 수긍되는 부분도 많았다. “간섭을 싫어하고 연인이어도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싫어하며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주위에서 재미없는 사람이라 느낀다.” 등... 거부할 수 없는, 딱 내 이야기이다.

자라온 환경 탓인지 타고난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은 늘 비어있었고 혼자 놀기에는 책 읽기만 한 것이 없었다. 공부보다는 동화나 위인전 그리스와 로마 신화 등 책의 종류는 가리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고전읽기반”이라는 초등학교의 특활반이 있어서였다. 초등학교 시절은 책 읽고 독후감 쓰던 일 말고는 특별한 기억이 거의 없다. 인생의 후반전에 글쓰기를 다시 하게 된 것도 오래된 버릇을 몸이 기억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간섭을 싫어하는 성격도 어려서부터 그랬다. 공부하라고 다그치면 책을 덮었고 가만 놔두면 오히려 열심히 했다. 그래서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알아서 할게요”이었다.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는 타인의 간섭을 무척 싫어했다. 이런 내 성격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 결혼이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성장 과정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났으니 분명 양보와 타협이 필요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었기에 초기에는 다툼이 잦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극복되었지만 지금도 가까운 사이라도 약간의 거리는 유지하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일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이것이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나만의 비결이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는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심하게 반박하자면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취미와 관심사가 통하는 친구들과는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아침 운동을 다니는 인근의 야트막한 산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이리저리 엉켜있다. 꽤 큰 나무인데 하나같이 허연 뿌리를 드러낸 채 누워있다. 자세히 보면 깊이 박혀있는 뿌리는 없고, 2~30센티 깊이에 방사형으로 뿌리가 펼쳐져 있다. 지표 가까운 곳에서 옆으로만 뿌리를 뻗어도 양분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굳이 힘들게 땅속 깊이 뿌리를 뻗지 않는 듯하다. 이러니 약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성격상 나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뜻이 통하는 이 몇몇 친구들이 나를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어 주었다. 오랜만에 내 삶을 굳건히 지탱해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물론 MBTI 성격유형 검사도 재미로 보는 정도이다. 성격은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환경에 적응해 변화되는 것이라 믿는다. 특정 성격유형만 100명을 모아 놓아도 그중에서 다시 서로 다른 16개 성격유형이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성격의 단점이라 여겼던 많은 부분도 실제로 삶에서는 유용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성격유형을 물어 호불호를 미루어 판단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마도 오늘 저녁은 맘이 맞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술잔을 기울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저를 보더라도 못 본 채 해주세요.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저는 INTJ입니다. 

주) MBTI : 네 가지의 대치되는 선호 경향으로 인간에게 잠재된 선천적 심리 경향(성격)을 16개로 분류하는 검사

 


전북출생

계간 (스토리문학) 시 등단

월간 (수필문학)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現)동서울종합복지센터 대표

(시집) 에콜로지보고서


김지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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