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산책로에 가을비가 지나간다.

촉촉한 봄비 따라 싹 튀우며 시새우던

꽃이며 선연한 잎들이 미련 없이 내려앉는

 

이미 진 낙엽이야 쓸려가 태워지면

형체도 남지 않고 한 줌 재가 되겠지만

희망가,

그 기억은 남아 겨울 추워 어쩔꼬

 

이 옷을 또 입을까.

형형색색 벗어 던진 빈 가지 나무들이

하늘 보고 땅을 보는

그 길을 밟고 밟으며 저물도록 오간다.

 

가을비가 내리는 산책길을 오가며 쓴 시다.

어머니는 늘 한복을 입으셨다. 특히 외출할 때 풀을 잘 먹인 모시 한복은 어린 내 눈에도 가히 일품이었다. 다섯 딸을 키우시는 어머니의 손재봉틀은 늘 분주했다. 덕분에 우리는 어지간한 틀 질은 등 너머로 배웠다. 간간히 바늘을 부러뜨려 놓고 서로 안 했다고 발뺌하다 혼나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바늘에 실을 꿰라 하시고, 풀기 뺀 옷을 장롱에 차곡차곡 넣으시면서 나직하게 내가 이 옷을 내년에 또 입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선연한 잎들이 미련 없이 내려앉으며 봄비 따라 싹 튀울 수 있을까?” 하는 듯했다. 형형색색 물들었던 꿈과 사랑, 어디다 코를 대고 숨을 쉬어야 할지 암담했던 시간들, 부정도 긍정도 아닌 갈등의 몸부림, 영웅과 황제처럼 화려함과 쓸쓸함이 가득 깔려있는, 하늘 보고 땅을 보며 저물도록 걸었다.

어제는 체험을 바탕으로 삶을 반추하는 출판기념회에 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갑게 손잡는 모습들이 좋았다. 자서전은 다양한 상상으로 필자를 이해하게 하지만 또한 나를 돌아보게도 한다. 무엇하며 살았는가, 지금 잘하고 있는가, 앞으로는 무었을 해야 할 것인가 등을 점검하게 한다. 누군가 인생은 반반(半半)이라 했다. 돌아보면 쓰리고 아린 기억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남는다면, 이제는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잔잔하게 아낌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는 이 옷을 또 입을 수 있을까하시면서 팔십 넘도록 정정하셨으니, 해마다 하셨던 나직한 그 말씀은 희망가였음이 분명하다. 늦가을의 자서전이 왠지 어머니의 희망가처럼 읽힌다.


약력

* 강무강 (본명 강성금)

* 전남 해남 출생

* 조선대. 성균관대 대학원 졸업

* 현대시조(‘94). 수필문학(‘16)으로 등단

* 현대시조 문학상(‘05). 시집 얼음새 꽃’(‘02)

* () 수원화성예다교육원 원장

* 詩人, 수필가, 한국문협 수원문인협회 활동()

* - 저서 <생활 茶禮> (‘01. 민속원)
- 논문 <화령전 祭儀禮의 문헌조사 연구> (‘07)
- 논문 <조선시대 眞殿 탄신다례 연구> (‘09)

- 단행본 <화령전 정조대왕 탄신다례> (’18)


        옥매화 / 사진=류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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