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삼백하고도 예순 날 습관처럼 제이는 그곳에 머물렀다.

섬이기도 하고 허공이기도 한 그곳은 사람이 몇 명 살지 않는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형체 없는 오두막 집이었다.

몇 년 전 부터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상상 속으로 수도 없이 짓고 부시고 하더니 기어코 자기만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그리곤 혼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게 여기까지는 못 올 거야’ 그 생각만 하면 뻔한 해답인데도 웬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고것이 알면 아마도 ‘너 당해 봐라’ 산천이 울릴 정도로 천둥같은 메아리를 치며 날뛸 텐데 그렇게 되돌아와 상처를 내주는 그 맛도 쏠쏠하니 좋다. 너무 편한 것은 좋은 게 아님을 이미 터득한 뒤라서 이 일로 인해 가슴이 아프고 속상해 할 일은 없다. 누군가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될 생각을 하면 저절로 반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완전히 제이는 심술 단지다.

제이의 지론은 적당히 심술 맞은 생각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누구에게 자극을 준다면 도리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별사람이 다 있다.

세상 사는 맛 중에 이렇게 심술 맞은 맛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양심이 있는 사람은. 그러나 제이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

허공의 오두막집에서 이제 제이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선 서너 평짜리 농막을 짓는 것은 기본, 산자락에 아주 작은 개울물을 벗삼아 나뭇가지에 천막을 치고 남들이 하듯이 의자 몇 개, 좀 넓적한 탁자와 부르스타를 올려 놓는다. 푸성귀는 이웃 사람들에게 얻고, 된장과 고추장, 소금과 참기름은 집에서 가져오면 된다.

머릿속에 생각한 것은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 생각이 사라져 의욕이 상실되면 안 되니까.

순간,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언제든지 방문하면 밥은 먹여 준다고.

소문이 날개가 달렸다는 말은 익히 아는 터, 몇 사람에게만 하면 어느새 발 없는 말이 되어 천 리를 갈 텐데 아무도 안 올 것이라는 걱정 따윈 내려놓는다. 왜냐하면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배가 부르니까.

제이가 그렇게 사고를 칠 무렵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쫄쫄 흐르는 골짜기 물에 웃통을 벗고 등목하기를 수 차례, 시간이 저절로 가버리니 무료함을 달래는 기막힌 방법을 터득했다고 혼자 키득거린다. 돈 안 들이고 시간 때우는 첫 번째 아이디어 심술을 부려 주변 속 좀 썩여 보자고 작정한다. 얼마나 먹혀 들을지 상상 초월이다. 그 또한 흥분이 된다.

맛이란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종류를 가지고 있다. 그냥 일반적인 맛 뿐만이 아니라 창조와 상상의 맛도 가지고 있는데 제이는 그중에 심술의 맛을 좋아한다.

적당히 골탕 먹이고 빠져나오는 그 기분은 짜릿하다 못해 시원하다. 일반사람들은 ‘맛이 갔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제이는 그 짓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야말로 식구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살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을 살짝 돌려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누가 제일 골탕 먹을까? 생각은 구체적으로 안 하지만 분명 ‘고것’일 것이다.

혼자만 젊잖은 체, 우아한 체 교양 있는 체하며 밖으로 나돌지만 이렇게 사고를 치면 정신이 나서 돌아올 것이다. 제이의 바람은 바로 ‘고것’에 있다. 친구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고 바로 ‘고것’이라니. 한때는 ‘발칙한 것’ 하며 정면으로 고것에게 덮어씌워 놓고 윽박질렀더니 이제는 아예 대꾸도 안 한다. 쳐다보지도 않고 눈도 안 마주친다.

제이는 스스로 내가 너무 했나? 생각에 골몰하다가 병이 날뻔했다.

그러다가 혼자 터득한 것이 심술을 부리자는 것이다. 약간의 심술은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유리창 집은 혼자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산 아래서도 산 위에서도 다 보인다. 그것도 몇 달 있다가 알았다. 결론은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이불이며 옷가지 식기까지 다 들고 나왔다. 마치 쥐방구리처럼. 그런데 ‘고것’은 아예 차곡차곡 살림살이를 싸 준다. 자근자근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 컵, 사발, 국그릇, 밥그릇까지. 심지어는 먹던 감자까지 싸 준다. 굶지 말라며. 이젠 정말로 걱정이다. 그래서 노트북을 하나 싸 들고 왔다. 그리곤 도사처럼 노트북에 엎드려 글을 쓴다. 최고의 문장가처럼.

막 떠오르는 아침 해를 사진 찍어 올리며 그 사진을 배경으로 아침마다 ‘고것’에게 보낸다.

어찌 아니 즐거운가/ 저 하늘과 이 햇살과/ 맨몸으로 맞는 바람/ 삭신이 저려 올 때면/ 산천 길게 뉘면 되고.

오늘은 시 한수 단톡에 올리고 혼자 위안을 한다. 약 올라도 할 수 없다. 그냥 그런대로 살면 그만이니까. ‘고것’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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