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이얍!”
“얍, 얍!” 
아무리 회를 거듭해가며 싸워도 두 우주 최고수의 결투는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우주 군단이 오르트들을 밀어붙여 지구를 압박해갔다.
“다음에 보자.” 
오르트 대제가 결투를 중단하고 지구를 향해 달려갔다.
“지구를 빼앗기지 마라!” 
오르트들은 밀리면서도 지구를 둘러싼 채 목숨 걸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으으윽!” 
대제가 지구 주위를 사납게 돌며 접근해 오는 우주 군단 병사들을 광선검으로 풀 베듯 쓰러뜨렸다.
“그만 두지 못할까?” 
알마크가 호령을 하며 달려가 또 한바탕 지구 위에서 대제와 신기의 무용 실력으로 다투었다. 우주 협곡 안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지구를 중심으로 서쪽 지역은 우주 군단이 차지하고, 동쪽 지역은 오르트가 차지한 것처럼 대치하게 되었다. 양쪽이 서로 포위된 형태였다. 동쪽 협곡 밖에는 빛의 천체로 우주 5군단이 지키고 있어 오르트들이 좁은 입구로 나가다가는 앞뒤에서 공격을 받게 되어 있었다. 서쪽 협곡 밖은 어둠의 천체인 캄캄한 오르트들의 지역으로 그 곳에도 수많은 오르트들이 지키고 있어 우주 군단도 앞뒤가 막혀 있었다. 양측 군대는 앞으로도 뒤로도 나갈 수 없는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며 마주 보게 되었다. 이 진퇴양난은 동쪽에 있던 태양이 서쪽에 가 있게 되어 태양계의 공전과 자전을 바꾸어 놓았다. 해가 서쪽에서 떠올라 동쪽으로 지게 된 것이다.
“지구를 탈환하라!” 
우주 전사들로 구성된 특수 작전이 전개되어 결국 지구도 절반씩 나누어 차지하며 설전이 오고갔다.
“지구 안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으면 모두 죽이리라!”
“우리가 할 소리!” 
이제는 목표가 서로 지구를 지키려는 우주 전쟁으로 바뀐 듯이 보였다. 다른 별들은 오르트들이 우주 협곡을 점령한 뒤 메뚜기 떼가 붉은 수수밭과 옥수수밭을 휩쓸고 지나가듯 남김없이 갉아먹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사막과 같아서 흙과 모래 부스러기만 바람에 날릴 뿐이었다.
“제가 오르트 대제를 만나볼까요?”
“사나운 자요. 위험해서 안 됩니다.” 
시리우스가 제안했지만 알마크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럴지 모르지만 대화하다 보면 같은 생각을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도 발견하지요.”
“교수께서 기대하는 것처럼 평화를 소중히 하는 자라면 오늘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오.”
“평화를 바라지만 억울함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선택도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했다. 시리우스는 알마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융통성 없는 진지함 때문에 이 전쟁에서 희생되지 않아도 될 목숨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리우스 교수, 나도 물을 손에 쥔 것처럼 빈손을 바라보는 날이 많았소. 그것을 부정하게 되면 길 한가운데 서 있어 언제 뽑혀 버릴지 모를 나무처럼 살아야 하오. 오르트 대제는 자유와 질서라는 양날의 검을 손으로 움켜쥐려는 무모한 행동을 한 것이오.”
“그 위험한 진실을 물어보고 싶군요.” 
둘은 서로 괴로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가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바라보는 방향이 같지 않아 자꾸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미자르 장군이 대동하게 해 주겠소.” 
알마크는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시리우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감사해요. 혼자 가게 해 주세요.”
“왜 그리 고집이 세시오!” 
알마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리우스는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대총독의 단순함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안 돼요. 혼자 갈 거예요.” 
시리우스는 알마크의 손을 부드럽게 쥐어 준 다음 그의 곁을 떠났다.
“저 쪽에서 협상을 제의해 오는데요?”
“거절해!” 
오르트 대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왕눈깔은 아직 안 왔나?”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대장 군관 고로콤은 왕눈깔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심하듯 말했다. 오르트 대재는 우주 쌍안경으로 지구 안을 들여다보았다. 데네브가 어떻게 자랐을까?
“은교!” 
‘행복한 집’ 마당에서는 눈빛보석과 백구가 부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나갈게!” 
2층에서 은교가 창문 열고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기다리느라 백구와 눈빛보석이 마당을 뛰어다니며 장난치고 있을 때 은교가 내려왔다.
“가자.” 
은교와 눈빛보석을 등에 태우고 백구는 껑충껑충 달렸다. 
“스님!” 
셋은 절 마당에 들어서며 불렀다. 
“부처님 낮잠 주무시다 깨실라 조용히.” 
법당 문이 열리더니 범진이 입에 손가락을 대고 나오며 반겼다. 
“안녕하세요?” 
눈빛보석과 은교가 한 몸처럼 인사했다. 
“너는 인사 안 해, 인석아.”  
범진이 백구에게 꾸중하자 백구는 불상에 절하듯이 넙죽 엎드렸다. 
“내가 부처님이냐?”
“하하하.” 
어리둥절하는 백구를 쓰다듬어 주며 세 사람은 즐겁게 웃었다.
“원장님은 잘 계시고?”
“네, 늘 바쁘세요.”
“건식이라는 놈이 왔다갔다며?” 
범진이 건식이를 말하자 은교는 시무룩했다. 건식이는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공고를 다니며 1학년 때와 2학년 때 한 번씩 패싸움해 벌써 두 번이나 정학을 당했다. 학교에서는 또다시 그런 사고를 치면 퇴학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원장 보고 그 놈 나한테 보내라고 해. 부처님 앞에 삼천 배 시키면 눈물콧물 흘리며 잘못했다고 빌 테니까.” 
그때 관음사 뒷산에 있는 천진암 빈터에서는 장기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군이요!”
“멍군이요!” 
절대자와 제석천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또 장군이요!”
“또 멍군이요!” 
모든 산이 절대자와 제석천이 장기 두는 천진암을 향해 봉우리를 숙여 조아리고 있었다. 하늘은 조금만 팔을 쳐들어도 곧 푸른 하늘 속으로 손이 들어가 천년수를 꺼내 마실 수 있을 것처럼 낮게 내려와 있었다.
“한 잔 드시오.”
“커, 시원하다.” 
제석천이 하늘에 손을 넣어 한 잔을 꺼내 절대자에게 주고 한 번 더 넣어 또 한 잔은 자신이 마셨다.
“그동안 제석천께서 수가 많이 느셨소.”
“제가 보기에는 절대자께서 그리 보이는데요?”
“요즈음 별들이 인간들을 닮아가는 것 같지 않소?” 
절대자가 운을 떼듯 말했다.
“그들에게 절대자와 제가 너무 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제석천은 대답 대신 거꾸로 운을 되물었다.
“제석천께서 내 말을 어긴 오르트 대제란 놈도 받아주시며 별들에게 너무 오냐오냐 해서 이리된 것은 아닙니까?”
“무슨 말씀이시오? 절대자께서 회초리로 너무 엄하게만 다루시니까 반발심이 생겨서 저리 된 것이지요.” 
절대자는 제석천이 오르트 대제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 줄 것을 부탁하려고 장기를 두자고 했던 것이다. 제석천도 오르트 대제가 출정한다고 인사차 찾아왔을 때 반대했지만 선택권까지 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막지 못했던 것이다.
“제석천께서 보내시는 어리석은 영혼들 길들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절대자께서는 별들을 빛의 천체에서 어둠의 천체로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는 어둠의 천체에서 빛의 천체로 보내 주기로 약조하시지 않았던가요?” 
빛은 어둠을 밝혀 주며 나아가는 시간이며, 어둠은 빛이 운행할 수 있는 품과 같은 공간이다(어느 학자는 두 천체가 타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고 했다.). 절대자와 제석천은 서로의 애로 사항을 이해해 달라며 이번 우주 전쟁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묘수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어험, 그래도 그놈은 그냥 두었더라면 우주 질서를 낙서하듯이 망쳐놓았을 놈입니다.”
“절대자께서 그리 내치셨으니 불쌍한 중생 제가 거둘 수밖에요. 그놈의 본뜻은 절대자께 더 감동 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이쯤에서 용서하시지요.” 
천진암에서의 장기판은 장군멍군만 거듭할 뿐 결판이 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권하거나 양보할 것 같지도 않았다.
“빗장이나 받으시지요?”
“허허.” 
두 신은 승부를 내지 못해 장기를 비긴 것으로 끝내며, 절대자는 동쪽 하늘로 제석천은 서쪽 하늘로 돌아갔다.
“그런데 너희들 왜 왔냐?”
“스님 보고 싶어서요.” 
범진이 궁금해 하자 은교가 애교 있는 목소리로 범진의 팔을 잡으며 살갑게 굴었다.
“에구에구,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내 니들 맘 다 안다.”
“뭔데요, 뭔데요?”
“합목 보러 왔잖아 요놈들아.” 
은교가 알아 맞춰 보라는 듯 장난치자, 범진이 은교의 빰을 살짝 꼬집어 주며 맞췄다.
“와, 귀신이다.” 
백구가 입을 떡 벌리며 놀라는 척 했다.
“내가 왜 귀신이냐, 중이지!”
“헤헤.” 
모두 웃으며 합목에게로 갔다. 늘 한 몸인 그들의 모습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안녕!”
“나무관세음.” 
은교와 눈빛보석이 인사하자, 합목은 합장하듯 몸을 구부렸다 폈다.
“어머, 불자 다 됐네?”

■ 반지와 생일
“헤헤.”
“아유, 더러워. 냄새나니까 저리 가.” 
백구가 또 합목을 핥았다. 합목은 백구만 나타나면 몸을 움츠리고 긴장했다.
“이 녀석아, 싫다잖아!” 
범진 스님도 합목이 싫어하는 것을 느꼈는지 백구를 야단쳤다.
“끄응, 스님은 맨날 나만 보고 뭐래.”
“좋으면 꼬리만 흔들어.” 
백구는 섭섭한 듯 눈을 끔벅끔벅했다.
“너희들 정말 분위기 있다.” 
은교가 등나무 줄기를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둘이 팔짱 끼고 줄기 아래로 통과해 봐.”
“그럴까?” 
눈빛보석과 은교가 팔짱 끼고 아치로 된 등나무 일주문을 통과했다. 
“너는 왜 통과하니?”
“들러리.” 
백구가 뒤따라가며 넉살을 부렸다.
“뭐라고 끙끙 거리는 거야? 너는 나하고 텃밭에 가 보자.” 범진이 백구의 귀를 잡고 끌고 갔다.
“며칠 있으면 너희 둘 생일인 거 알아?”
“어떻게 알아?” 
합목이 말해 주자 눈빛보석과 은교는 깜짝 놀랐다.
“안드로메다의 잘 생긴 기드로온 왕자님 생일은 우주에서 관심이 많았지.” 
눈빛보석은 미안해서 은교의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둘은 생일이 한 날 한 시인데 데네브가 생일인 것을 축하하는 이는 오직 기드로온 하나뿐이었다. 
“괜찮아, 네 생일이 내 생일이잖아.” 
은교는 가지런한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예쁘게 웃었다. 
“미리 축하해 줄게.”
“고마워.” 
은교와 눈빛보석은 둘이 함께 잡은 손으로 합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백구야, 가자.” 
둘은 텃밭을 향해 가자고 소리쳤다.
“점심 공양하고 가.” 
“스님께 폐 끼치잖아요?” 
“누가 폐 끼치래? 우리가 나물 뜯는 동안 둘이 밥하고 국 끓여.” 
은교와 눈빛보석은 신바람이 나서 부엌으로 갔다. 함께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며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너무 기뻤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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