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면 어떤 심정일까? 설마,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이야? 반문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1980년부터 22년 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가 tvN에서 ‘회장님네 사람들’로 소환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은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반갑게 웃었다.

그중에는 고인이 된 분이 몇 분 계신다. ”응삼이“역을 맡았던 박윤배 배우도 그중 한 사람이다. 빔 스튜디오가 비엠리얼 솔루션 디지털 휴먼 기법으로 그를 복원시켰다. “우리 전원일기 식구들 잘 지내셨죠?” 능청스러운 첫인사에 배우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람, 신기함, 반가움, 그리움의 감정에 출연자들 눈가가 촉촉해졌다.

“응삼아, 나 알아?” 김수미 배우가 물었다. 그러자 “아휴. 일용 엄니를 왜 몰라유?” 하는데 망자가 아니라 꼭 살아 있는 사람과 영상통화를 하는 듯했다. 딥페이크 솔루션이 상용화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준비 없이 보낸 이들의 마음 치유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 싶었다

요즘 뜨거운 소식은 챗GPT이다.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인간지능이 검색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명령어를 입력하면 즉각 답을 내놓는다. 질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추론과 상황인식이 가능하여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하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메뉴만 정하면 바로 밥상을 받을 수 있다. 빠르다. 문장에 격이 있고 전후 문맥도 정확하다. 물론 편향적인 정보와 오류, 표절 등의 문제점이 있지만, 완성된 요리로만 평가하면 그럴싸하다. 들어갈 재료가 다 들어갔고 간도 잘 맞고 영양소와 향도 일품인, 그야말로 제대로 된 한 상이다.

이제 이용자는 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볶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사람은 잠을 자고 휴식해야 하지만, 챗GPT은 쉴 새 없이 학습한다, 방대한 자료를 먹어 치운다. 소화력과 암기력도 좋다. 학습한 걸 똑똑하게 응용해서 주문만 하면 어떤 요리든 뚝딱 내놓는다. 작문, 논문은 물론 연설문도 쓴다. 사람이 쓴 건지, 챗봇의 실력인지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들다.

얼마 전에는 ‘지아’ 라는 이름을 가진 AI가 쓴 시를 읽었다. “시란 무엇인가?”란 제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이고/ (중략) /덜어내고 덜어내서/ 최후에 남는 말이 시”라고 지었다. 사려 깊고 깔끔하여 미래에 사라질 직업에 작가도 포함되는 게 아닐까, 위기의식을 느꼈다.

인간은 읽은 것도, 들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는다. 최근의 나는 워낙 깜빡거려서 내 기억을 믿을 수가 없다. 앞으로의 세상은 키보드만 잘 두드리면 되는 걸까? 그동안 검색의 왕좌 자리를 차지해 왔던 구글은 비상이다. 중국의 ‘바이두’ 한국의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곧바로 ‘바드’를 출시했고 네이버도 AI챗봇과 검색을 통합한 ‘서치’를 상반기 출시 예정이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차려주는 밥상에 대한 평가와 어떻게 받아먹을지에 대한 고민은 각자의 몫이다.

이제 우리의 경쟁자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고 AI가 인간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AI를 보조해 주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사람보다 인공지능과 생활하는 시간이 더 길다. 병원 로비에서는 로봇에게 도움을 청하고 패스트푸드나 카페에서는 키오스크로 주문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라면집도 무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로봇을 주치의로 둘 날도 멀지 않았다. 좇아가느라 바쁜데 가끔 생각이 멈춘다. 뇌가 쪼그라드는 걸까.


임수진 수필가
임수진 수필가

약력

소설가, 에세이스트

월간 「수필문학」지에 「아름다운 화석」으로 등단

수필집 : 나는 『여전히 당신이 고프다』, 『향기 도둑』

기행수필 : 『팔공산을 걷다』 단편소설집 『언니 오는 날』

현진건문학상 신인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대상

수원문학 수필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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