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 허공으로 흐르는 급류 
우주 경비선이 시베리아 흰 벌판을 내려다보며 북상하고 있었다.
“열어 줘.”
“못 나가게 문을 단단히 잠가.” 
스노가 눈밭을 보자  뛰어나가고 싶어 떼를 부렸다. 시리우스는 키드라와 통화를 끝낸 뒤 그동안 지구에서 활동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색 대장입니다. 지구에서 속히 나오셔야겠습니다. 천왕성도 함락되고 지금 토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오르트들에게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보고서와 개인 자료를 따로 분리하고 있을 때 알테어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주 3군단은 어디까지 진군했어?”
“목성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곳이 1차 저지선인 것 같습니다.” 
Nn11이 비행 속도를 광속 이상으로 높이자 무음으로 날던 우주 경비선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북극문을 빠져 나갔다.
“이번에는 대총독이십니다.”
“시리우스 교수, 지구는 위험 지역이니 어서 나오시오.”
“드릴 말씀이 없어 미안하군요.” 
알마크나 시리우스는 착잡한 얼굴로 서로 대하려니 비록 멀리 떨어진 영상이지만 마음이 괴로웠다.
“기드로온 왕자가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지구로 다시 끌려갔어요.”
“알고 있소. 그건 교수 때문이 아니요. 군작전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해적들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소.” 
알마크는 아들 걱정에 속이 타들어갈 텐데 조금의 내색도 없이 시리우스를 염려해 주고 있었다. 
“출동 명령서는 받았나요?”
“몇 시간 전에 받자마자 군단들을 서둘러 움직이고는 있소. 3군단이 얼마나 버티어 줄지 모르겠소.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으니 빨리 나오시오.” 
시리우스가 알마크와 통화하는 사이 우주 경비선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 협곡 동쪽 입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무운을 빌어요.”
“무사히 귀환하기 바라오.” 
알마크는 시리우스와 통화를 끝내자 유니콘을 타고 우주 허공 위로 달려 올라가 하늘 꼭대기에 섰다. 
“진군!” 
우주 군단 총사령관은 오른손에 쥔 광선검으로 허공을 크게 가르며 소리쳤다. 우주 벌판을 달려나가고 있는 백마 기병인 우주 군단들의 위용은 거대했다. 거친 파도뿐인 밤의 망망대해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풍경이었다. 알마크는 출정하는 군단들 앞을 비호처럼 오가며 전열을 가다듬고 작전을 지시하였다. 이번 우주 군대의 전방으로 나서는 군단은 2, 5, 7군단이었다. 1, 4, 6군단은 후방을 방위하도록 남겨 두었다. 카니스 의장은 1군단이 최전방으로 움직여 주기를 바랐으나, 알마크 총사령관은 1군단장이 정치군인인 것이 이번 작전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다른 것이 있다면 3군단을 재가없이 출동시킨 것을 눈치 못 채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7군단 앞으로!” 
알마크의 천둥소리와 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횡으로 지평선의 바람처럼 달리던 우주 군단이 대형의 변화를 일으켰다. 허공 왼쪽 끝으로 달리던 7군단이 속력을 더 내며 전군의 맨 앞으로 나서며 창끝처럼 종으로 질주해 나갔다. 7군단을 가장 앞으로 세운 것은 실전 전투 능력이 뛰어난 특수 군단이었기 때문이다.
“2군단 앞으로!” 
2군단도 대형을 횡에서 종으로 바꾸어 7군단의 뒤를 따라 속도를 더 내며 달렸다. 5군단은 그대로 형세를 유지한 채 달려갔다. 수십억 명의 하얀 기마병이 달리는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우주 공간 속으로 수억만 리 흐르는 하얀 급류 같았다.
“비켜!” 
우주 경비선은 맞은편에서 노도처럼 달려오는 우주 군단을 발견하고 깔리지 않으려고 급강하하여 가까스로 피했다.
“이야, 멋있다.” 
스노는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머리 위로 달려가는 군행렬을 올려다보며 좋아했다.
“어? 엄마다. 엄마!” 
알마크를 태우고 날고 있는 흰 유니콘을 발견하고 펄쩍펄쩍 뛰며 나가고 싶어 했다.
“으앙, 나 엄마한테 갈래. 엄마한테 보내 줘.”
“미안해. 조금만 참았다가 만나자. 스노 착하지.” 
시리우스가 스노를 안고 바이오껌을 주며 달랬다.
“별들의 공관 앞에 내려줘.” 
Nn11이 경비선을 공관 앞에 착륙시켰다.
“그동안 수고 많았고 고마워.”
“왕자님을 모셔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시리우스는 Nn11와 Nn12 두 우주 전사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이모 따라갈래.” 
스노가 우주 전사와 함께 가다말고 시리우스에게로 달려왔다.
“너는 우주 사령부로 가야 돼.”
“그냥 둬. 총사령관께 내가 돌보다 전쟁 끝나면 보내 준다고 말할게.”
“그럼.” 
두 전사는 거수경례를 한 다음 우주 경비선을 이륙하여 떠났다.
“여기 있어.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시리우스는 스노를 카니스 방 앞에서 기다리게 하고 들어갔다.
“이게 누구시오. 시리우스, 연락도 없이 언제 돌아온 거요?”
“지구에서 출발하기 전에 의장께 보고했는데요.”
“아, 그랬나요?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시리우스가 지구로 떠나기 전보다 카니스는 몸이 더 불어 있었다.
“보고서는 여기 있어요.”
“지구 온도 조절 장치의 고장 원인이 북극문을 뚫은 해적들의 소행이었군요.”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저지른 오염도 일부분 포함되지요.” 

카니스 의장은 6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대충 제목만 훑고 있었다.
“시리우스 교수께서 이번 출장으로 고생 많으셨소. 그래서 말이오. 휴식 기간을 조금 가지는 게 어떠시오?”
“무슨 뜻이죠?” 
카니스가 말을 길게 하는 것으로 보아 설득해야 할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음을 시리우스는 간파했다.
“카노푸스는 어디 있죠?”
“아, 박물관장과 함께 성체 성운에 인사드리러 갔소. 1급 기밀 표시를 더욱 안전하게 수리하고 왔다고 성하께 알려드리러 간 것이오.”
“호호호, 파헤치다가 지구 동물들에게 쫓겨난 것이 아니고요?” 
시리우스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했다.
“교수는 우주대학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라오. 이제부터는 카노푸스 서리가 우주의회 일을 맡을 것이오.” 
카노푸스가 성체 성운에 간 것은 서리 임명의 재가가 포함된 것이었다. 보통은 의장이 동행하게 되어 있지만 카니스는 비상시국이라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략된 것이었다.
“서리? 누구 맘대로.”
“흥분하지 마시오. 지금은 전시 중이기 때문에 내 권한으로 조각할 수 있다는 것을 교수도 잘 알지 않소. 교수의 경질은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해 주시오. 기드로온 왕자 납치 협상단장으로서 실패했고, 1급 기밀 표시를 옮기려던 아틀란티스 박물관장을 협조해 주지도 않았소. 이 일은 성하께 보고 드리지 않겠소.” 
카니스 의장은 시리우스라는 잔소리쟁이를 떼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돌아온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전시 중이라는 핑계로 서둘러 조각을 단행한 것이다. 시리우스가 오고 있는 것을 몰랐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었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계속 보고 받으며, 똑똑한 시리우스가 반박할 것에 대비해 이것저것 궁리해 놓은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쾅!” 
시리우스는 의장실 문을 세차게 닫고 밖으로 나왔다.

■ 우주 전쟁
“꾸물대지 말고 공격하라!” 
태양계의 요새인 토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오르트 대제는 부하들에게 독촉했다. 백억이 넘는 오르트들은 모습이 제각각이었다. 염소처럼 네 다리로 뛰거나 늑대처럼 이빨이 날카롭거나 도마뱀처럼 꼬리가 있기도 하고, 발톱이 뿔인 것과 한국 도깨비처럼 초록몸에 뾰족뾰족한 쇠가시가 박힌 몽둥이를 든 외눈박이도 있었다. 꽤액-, 공룡새처럼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 대는 오르트도 있었다.
“아악! 훈육관장님 어서 피하십시오.”
“수비 대장 정신 차려!” 
수비 대장이 원숭이처럼 생긴 오르트가 쏜 화살에 가슴을 맞았다.
“헛!” 
수탉처럼 생긴 오르트가 주둥이로 태양훈육관장의 어깨를 찌르며 공격해 왔다.
“이놈이!” 
태양훈육관장이 움켜쥐는 바람에 오르트는 몸이 뭉개지며 죽었다.
“으으으, 목성으로 가십시오.”
“위생병, 위생병! 수비 대장을 응급 처치해!” 위생병도 부상당한 다리를 끌며 다가왔다. 수비 대장은 출혈이 심해 의식을 잃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수비 대장, 수비 대장!” 
태양훈육관장은 숨을 거둔 태양 수비 대장의 눈을 감겨 주었다.
“목성으로 후퇴.” 
태양훈육관장과 아직 살아 있는 수비 대원들은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홍수 같은 오르트를 더 이상 막아내지 못하고 토성으로부터 퇴각했다.
“와, 와.” 
오르트들이 토성과 고리에 가득 들어차 함성을 질러 댔다.
“멈추지 말고 목성으로 진격하라!” 
토성에 입성한 오르트 대제는 새카맣게 몰려 있는 부하들에게 호령하여 목성을 향해 쫓아버렸다.
“대제 전하, 목성에 우주 3군단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전열을 갖추기 전에 밀어붙여.” 
대장 군관이 보고 하자, 대제는 적에게 전력을 극대화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진격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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