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비가 추절추절 내리는 어느 늦은 밤 빼곡하게 들어선 주차 차량 사이로 웬 떡인가 싶게 한 개의 주차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에서 내려 이중 주차한 차들을 낑낑대며 밀어내고 차량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했다.

판단이 미숙했는지 앞 뒤 차를 밀어두었으니 이제는 차를 잘 댈 수 있겠다 싶어 좌회전으로 핸들을 돌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뒷 공간이 얼비치고 조절이 잘 안된다 싶어 차문을 내리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차에서 내려보니 앞뒤로 밀어 놓은 차간 공간이 적었던지 세워 둔 차량 앞 번호판을 보기 좋게 떨어뜨려 한쪽으로 기울어진 게 보였다.

비 오는 것도 아랑곳않고 번호판에서 떨어진 너트를 이리저리 맞추어 보았지만 번호판은 잘 붙지가 않고 계속 떨어져 흔들거렸다.

속상해도 어쩔수 없다 싶어 앞 창문에 붙은 전화번호를 돌렸다. 분명히 남자분일거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돌렸는데 어쩜 잠결에 깬 여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죄송하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번호판을 박았어요. 어쩌면 좋아요.”하면서

“너무 늦은 밤이라 내일 내려와서 보시면 어떨까요?” 라고 했더니 딸과 함께 우산을 쓰고 내려 왔다.

“처음 있는 일이네요. 번호판이 떨어지는 것은..” 하면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내일 날 밝으면 다시 확인해야겠다고 하여 명함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주의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간신히 잠을 재촉했다.

이튿날은 일과가 바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차주로부터 연락이 오겠거니 생각하며 출근을 해 버렸다. 한 편으로는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궁리하면서 어젯밤 야속했던 순간을 자꾸만 떠올리며 바보같은 짓을 왜 했을까 자책을 했다.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오후가 돼서야 핸폰으로 연락이 온 번호를 찾아 보았다. 마침 적어 놓은 핸드폰의 번호가 있어 열어보니 바로 전날 밤 차량번호판을 망가뜨리게 한 그 차주였다. 얼른 마음을 다잡고 전화를 하니 차주분은 공업사에 갔더니 번호판만 부서진게 아니고 옆 부분도 긁혀서 번호판 외에도 60만원은 더 들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실수로 남의 차를 긁은 것만 해도 속이 상한데 돈까지 들어야 하니 선뜻 무어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멈칫거리기 한참 후에 좀 비싸니 십만원만 깎아 주면 어떻겠냐고 하면서 계좌번호를 불러 달랬다. 차주인은 핸폰으로 문자를 보내 와 같은 아파트인데 이런 일이 있어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날은 금요일이라 이럭저럭 토, 일요일을 지나면서도 선뜻 속상한 마음에 돈을 부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루만 더 지나서 월요일에 부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친구 집에도 갔다가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점심 때쯤 50만원을 차주의 계좌로 부쳐 주었다.

그리곤 그날이 그날같이 차 관련 일은 잊어버리고 무심히 지나갔다.

그러던 얼마 후 메시지가 온 게 눈에 띄어 열어보니 정말 고마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차주는 같은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얼마나 상심이 되었느냐고 하며 번호판 붙이는 값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요즘 살벌하기 그지없는 세상에 너무나 놀랍고 고마운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이렇게 고마운 이웃도 있구나 생각하니 살고 있는 아파트가 한없이고귀해 보이고 감사하게 느껴지면서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다 훌륭하게 생각되어졌다.

자랑스럽고 신나는 일이었다. 저녁때쯤 통장으로 들어 온 돈은 번호판 가격을 뺀 나머지 돈이 고스란히 들어와 있었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리석은 마음이 차일피일 미루다 기어이 표현조차 하지 못했다. 이 일을 어딘가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오늘은 지면을 대신해 몇 자 적는다.

고마운 이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듯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졌다.

이후로는 늦은 밤 귀가하게 되면 어김없이 아파트 주차장의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고마운 그 분이 어디선가 나오지 않으려나 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이 혹시나 나처럼 어리석게 차를 돌리다가 남의 차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여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우리 주변엔 나보다도 더 마음이 따뜻하고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으며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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