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새벽에 남한산성 제2 남옹성치를 다녀왔다. 병자호란의 아픈 기억만 알려진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쌓은 산성으로 유서 깊고, 외세에 한 번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두운 새벽에 산을 오르니 앞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 일출 회원들과 함께 오르니 힘들지 않았다. 제2 남옹성치는 동서남북이 확 트였다. 그래서 새벽 일출 보기엔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일출을 기다렸다. 이제나저제나 해가 솟아오길 기다리자, 드디어 동쪽에서 붉은 여명이 조금 비치더니 손톱만 한 붉은 해가 조금씩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

“와아-”

사람들의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오래간만에 보는 일출과 산바람은 시원했다. 성남과 서울 도심의 불빛도 보이고 사람들은 일출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모처럼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일출 사진을 찍고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전송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에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 사진작가인 숀이 히말라야에서 눈표범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날을 기다리다 드디어 카메라 앵글에 눈표범이 포착된다. 그러나 숀은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왜 셔터를 누르지 않나요?” 월터가 물었다. 그런데 사진작가 숀의 말이 멋지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하는 것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눈으로 바라보는 일출은 훨씬 예쁘고 황홀한데 굳이 카메라에 담으려다 멋진 감동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해는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막상 해가 하늘로 올라온 뒤에는 감동도 식어버린다. 그러나 일출의 경험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며 한 해 소망을 빈다. 어제나 오늘의 해는 똑같건만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새해 첫날 바라보는 일출은 더 살아있는 듯 보인다. 그만큼 새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희망 일출 회원들이 연을 꺼냈다. 일반적인 연이 아닌 대형 연이다. 큰 리더 연에 작은 연 100개를 이어서 하늘로 띄우는 데 정말 멋졌다. 나도 연줄을 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연을 사랑하는 연 연맹 단장님은 늘 연날리기 봉사를 해 주셨다.

연은 자유다. 바람만 불면 자유롭게 하늘로 솟아오르며 활개를 친다. 바람이 좋지 못하면 순간 곤두박질을 치기도 한다. 연에는 가오리연과 방패연이 있는데 우리는 흔히 가오리연을 날렸다. 그 연에 성격에 맞는 디자인을 하여 날린다.

3.1절에는 독립운동가 연을 날리고, 6.25 즈음해서는 유엔참전국 22개국 감사 연을 날리기도 한다.

“이연 저연이 있는 데, 자유롭다고 너무 나대면 곤두박질칠 수가 있어. 줄을 풀고 당기며 적절히 힘 조절해야지, 연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연은 다 곤두박질해 버려.”

연 연맹 단장님은 연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다. 어느 날 우연히 연사를 만나고부터 연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행사를 못 할 때, 가정으로 연 3개씩 꾸러미로 보내고, 줌(zoom)을 통해 학생 연 체험교육을 했는데, 2천 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 있었다. 그때 인연으로 나도 연날리기에 푹 빠졌다.

“남자들을 너무 풀어주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다 문제가 생겨. 그래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해”

연과 관련지어 비유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지인의 말에 웃은 적이 있다.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연은 네트워크, 연결이다. 연을 통해 소중한 인연이 연결되기도 해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일출을 보며, 소원을 기원하듯이 연을 날리면서도 소망을 빈다.

아바타가 인도어로 ‘강하’란 뜻이 있다고 한다. 신과 인간이 소통이 어려워 신이 아바타가 되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인간과 소통을 하는 것이란다. 연 연맹 단장님은 한국전쟁 참전국을 위한 감사 연을 만들어 각 참전국 참전비에서 연을 날리고 있다. 작년에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열리는 세계 연 축제에 감사연 100개를 만들어 참가해 각 나라 팀들에게 연 한 개씩 선물로 주어 축제를 빛나게 했다. 늘 연을 갖고 남들에게 베푸는 연 연맹 단장님의 마음씨를 보면 정말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다. 베푸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렇게 배려하고 베풀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연날리기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만끽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정말 좋은 놀이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큰돈 들이지 않는 연날리기는 우리나라의 위상 강화와 민간외교로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양한 행사에 연을 갖고 홍보하고 응원의 도구로 쓸 수 있으니 정말 멋진 일이다. 대형 연에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코로나 OUT!’ 등 축하와 응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남기며 연을 마음껏 띄울 수 있어 좋다.

또, 지역축제로서 연 축제를 하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가끔 수원화성 연무대 창룡문 근처에서 연날리기한다. 지난 7월 25일 창룡문에서 연 연맹 단장님과 정전 70주년 평화기원 연날리기를 했다. 덴마크에서 온 연사도 한국의 방패연을 배우고 싶다고 해 1인을 위한 맞춤형 워크숍도 갖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미국 하버드대생 18명도 남의 나라 전쟁인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전사하였다. 미국의 엘리트인 그 학생 중 장군의 자녀도 많았다고 한다.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뒤에 해도 늦지 않다”라고 말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해밀턴 쇼 대위는 녹전리에서 적의 매복공격으로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젖었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적은 디자인 문구와 감사의 의미를 담은 연을 띄우니 각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차 무척 많이 달려와서 사진을 찍고 신문기사를 내주었다.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와 연 연맹이 함께하는 정전 70주년 기념행사는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전 육군참모총장과 6.25 참전 유공자이신 두 노병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분이셨다. 두 노병의 눈은 살아있었다. 각계인사 22명이 참석하여 절체절명의 시기에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한국의 자유와 생명을 지켜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는 행사를 하였다.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에서는 참전국 참전용사의 유가족과 자녀를 찾아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기억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국민교육 차원과 UN 참전국과 참전용사, 그 후손들에게 감사를 전함으로 국격을 높이는 민간외교 차원에서 가치 있는 동행,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참전비가 위치한 시군을 찾아 연날리기도 하며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습에 늘 감동한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때 죽은 사람들을 매장하는 가운데 시와 노래 등 다양한 문화가 발전해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다고 호모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를 명명한 네델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말했다.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 낸 것이 ‘사유’도 ‘노동’도 아닌 ‘놀이’라고 한다. 남자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호모루덴스의 흔적은 넥타이라고 한다. 놀이는 자발적인 행위라 신이 나고 중독성이 있다. 놀이는 자유시간에 한가롭게 할 수 있는 행위로 상상력이 닿으려는 최종의 목표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호모루덴스는 상상력을 통해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상상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제2의 호모루덴스의 시대가 도래한 듯싶다.

연을 통해 즐겁게 놀면서 자유롭게 여가생활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서 늘 새로운 변화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네오 호모루덴스(Neo-Homo ludens, 새롭게 놀이하는 인간)를 꿈꾸며 꿈 너머 꿈을 실천하는 멋진 삶을 살고 싶다.


강심원 아동문학가
강심원 아동문학가

충북 단양 출생

≪문학미디어≫ 아동문학(동화) · 시 부문 신인상, 문학미디어 작가상 수상

문학미디어작가회장 역임, 현) 수원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시집 『패랭이꽃』, 공저 『문살에 핀 꽃』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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