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 · 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김훈동 시인 · 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규방공예는 예로부터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 내려온 우리 고유문화의 앙금이다. 나정희 명인이 생활 속에 면면히 흘러내려 오는 조각보를 오롯이 현대적인 색감으로 섬세한 미의식을 환기(喚起)시켰다. 외래문화의 범람으로 민족 고유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고 있는 때 값진 전시다. 70대 중반의 그가 “무조건 세상에 맞추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는 듯 조각보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우리는 얼굴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다 다른 고유한 존재들이다. 요즘은 다들 자기답게 살고자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를 위해 바느질을 하고 바늘의 신기함은 조각보를 통해 드러냈다. 바느질은 여러 조각을 하나로 합치게 하는 작업이다. 융합(融合)과 재생이다.

나정희 명인은 온 날을 정적에 깊이 도사리고 앉아 조각보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혼자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내어 조각보에 몰두한다. 생각했다 풀어헤치고 또 생각했다 또 풀어헤치면서 그런 끝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단단한 작품을 만난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조각보를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만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한국의 정서를 조각보에 담아냈다. 다양한 염색 기법도 창안했다.

나정희 명인은 “작은 천 조각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드는 조각보는 일종의 수행(修行)과도 같은 일이다.”라며 “지나온 시간의 조각들이 수행 속에서 촘촘하게 연결돼 현재의 자신을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피력했다. 나정희 명인은 어릴 적 할머니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그 천으로 가족들의 옷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어찌 보면 나정희 명인에게 천과 바늘, 실은 운명적 만남이었을 듯하다. 바느질은 그가 어려서부터 봐온 일상이었다. 물레를 다루고 뽑은 날실을 도투마리에 감거나 인두질과 한복 짓는 법을 배웠다. 아마도 바느질 솜씨가 체질적으로 배어 있기에 ‘대한민국 조각보 명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흘 전에 끝난 나정희 명인의 규방공예 개인전 ‘조각보에 담은 나의 시간전’에서 할머니를 생각하며 조각보 ‘내 고향 언덕’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심혈을 쏟아 만든 작품이다. 실을 다 사용하고 남은 실패 50개에 작은 천 조각을 감싸 가족에게 헌신했던 모습을 ‘환생’이란 작품으로 들어냈다. 명인의 삶과 예술성, 전승의 맥락과 실험적 요소가 모두 함께 녹아있는 명작이다. 나정희 명인은 얼마 전까지도 수원국악협회장이었다. 그는 필자가 작사한 수원아리랑을 작곡가에 의뢰하여 CD를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보급했다. 서울에서 개최된 전국아리랑축제에 참가하여 은상을 수상했다. 젊은 날 민요를 하며 이수자가 되어 국악인으로 살아온 시간을 조각보 ‘나의 아리랑’으로 표현한 작품도 출시했다.

21세기에도 조선 시대 규방(閨房)에서 여인들이 모여 앉아 바늘로 꿰매고, 접고, 가위질하는 여인들의 침선(針線) 모습은 상상만 해도 정겹다. 그 모습을 행궁동 공방(工房)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돋보기를 끼고 한 땀 한 땀 그 옛날을 생각하며 규방공예에 심취한 나정희 명인의 모습은 언제봐도 단아(端雅)하다. 그는 13대 종손의 종갓집 맏며느리다. 생각이 깊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무게가 있다. 언제봐도 진중(鎭重)하다. 할머니, 어머니에 이어 한복 솜씨를 발휘하여 가족들의 옷을 만들었다. 차례, 시제를 지내며 전통음식을 만드는 등 선조들의 관습과 생활문화를 익혔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바다가 있는 한 파도는 늘 치듯이 우리가 인생을 사는 한 힘 들고 어려운 일은 겪게 마련이다. 종손 맏며느리로서 자기 인생을 사는 건 쉽지 않다. 부군(夫君)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경기민요 이수자로 국악에 심취할 때도 그랬고 지금 하는 규방공예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공(功)을 낭군에게 돌렸다. 치밀하고 섬세한 기질을 가진 나정희 명인은 수원 규방공예연구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했다. 수원의 규방공예를 전국으로 날개를 폈다. 규방공예를 전국 공모전으로 확장시켜 올해 열두 번째를 맞는다. 규방공예 명인 나정희의 조각보 세계가 정조가 만든 개혁도시 수원특례시의 또 다른 예술문화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새수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