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종 편집인
김인종 편집인

영국의 물리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은 ‘굳은 인내와 노력을 하지 않는 천재는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과 상황에 따른 운도 중요하지만, 이를 개화하기 위해서는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수원은 특별한 도시이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와 본인의 왕권 강화를 위해 신도시인 ‘수원 화성’을 건설했다. 이는 정조의 의지와 추진력의 결과물이지만 정약용과 같은 뛰어난 인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실현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이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수원은 경기도의 가장 핵심적인 도시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서울에 있었던 경기도청을 이전함과 동시에 각종 공공기관이 수원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 본사가 수원을 거점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덕분에 주변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염태영 경제부지사는 수원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헌신했던 인물이다. 순탄치 않았던 성장 과정을 딛고 서울대 농화학과에 입학해 무사히 졸업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해 10년 이상 근무했는데 이 경험이 체계적인 조직 관리와 경영 노하우를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염 부지사는 돌봐야했던 동생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자 사직서를 내고 돌연 환경운동가의 길로 들어선다. 1994년 5월, 환경을 살리는 수원시민의 모임인 수원환경운동센터를 발족해 활동했고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대통령비서실 국정과제담당 비서관에 임명돼 국정운영에 힘을 보탰다.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수원시장직에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절치부심한 끝에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재도전해 당선됐다. 그리고 민선 6기와 7기에서도 당선되며 수원시 최초 3선시장이라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염 부지사는 시장 재임기간 동안 전국대도시협의회 회장, 마을만들기지방정부협의회 상임회장, 더불어민주당 기초단체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시민배심원제, 시민참여 도시계획수립, 마을만들기, 생태교통 시범사업 등 도시혁신 모델을 만들었다. 2020년에는 모두가 어렵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큰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2022년에는 시장직을 사퇴하고 당시 김동연 전 부총리를 도와 경기도지사 당선에 역할을 한 공로로 인수위원회 위원장직과 도정자문회 의장에 위촉됐으며 경제부지사에 내정됐다. 김동연 지사가 경제 전반에 대한 전문가적 혜안으로 방향을 제시하면 이를 실행시키기 위한 행정적이고 정무적인 과정들을 챙겼다. 또,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하는데 역할했으며, 기업인들과 ‘맞손토크’를 진행해 애로사항을 듣고 답변하는 현장 행보에도 힘쓰고 있다.
인생의 거의 모든 시기를 수원에서 보낸 염태영 경제부지사는 성공이 보장된 대기업 임원의 길을 포기하고 환경운동가이자 정치인의 삶에 뛰어들었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쉽지 않은 일들을 어떻게든 도전해 성과를 낸다는 측면에선 경외심이 느껴진다.
염 부지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정치 일생의 처음과 끝은 자치분권 실현에 있다고 할 수 있다”라며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제 정치비전과 역량, 행정경험이 현 정치 질서 속에서 쓰임새가 있을지 고민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향으로든 결론이 난다면 다시 한번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분명 수원 최초 3선시장을 역임했고 현(現) 경기도 경제부지사로서 가지는 상징성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미 수원을 대표하는 거목으로서 그 지위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고민하지 않고 그의 역량이 더 크고 뜻있는 곳에 사용되기를 수원시민들은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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