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심심해. 여기는 아무도 없어서 외롭다.” 
왕눈깔이 뾰족한 수가 없는지 궁리하고 있는데 분화구 아래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슈?”
“그러는 댁은 누구쇼?” 
왕눈깔이 날아서 내려갔다.
“엥? 여섯그만 형님, 여기서 뭐하슈?”
“아니? 아우가 나타나다니. 난 역시 운이 억수로 좋다니까.” 
여섯그만에게는 왕눈깔을 만난 것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섬을 만난 것과 같은 기쁨이었고, 왕눈깔에게 여섯그만은 아는 척하기 싫은 질 나쁜 고향 선배 만난 기분이었다.
“키드라 해적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뭐유?”
“알려 줄 테니 이것 먼저 풀어 줄 수 있어? 나는 부리가 부러져서 말씀이야.” 
여섯그만의 모습은 추해 보였다. 험한 인상인데다 애꾸눈에 털은 반쯤 깎였고, 부리도 이 빠진 것처럼 부러져 있다.
“자, 이 만큼 풀어주었으니 얘기해 보슈.
“어허, 어찌 반만 풀었어?”
“에헤이, 한꺼번에 풀었다가 형님이 말 안 해 주면 나만 꽝되는 거 아니유?” 
왕눈깔은 여섯그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에 자신이 배신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식, 호랑이 꼬리를 삶아먹었나? 의심은 많아 가지구.”
“싫으면 관 두슈. 난 지금 바쁘니까.”
“어허어허, 왜 그러는가? 그럼 반만 얘기해 주지.” 
날아가려는 시늉을 하는 왕눈깔을 여섯그만이 달랬다.
“말해 보슈.”
“우주 군단이 협곡 안으로 공격해 오니까 지구로 도망갔어.”
“고맙수.” 
여섯그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눈깔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야 임마, 어디 가. 마저 풀어 줘야지!”
“나머지 반은 알 필요 없으니까.” 
여섯그만은 서쪽으로 날아가는 왕눈깔의 뒷모습을 향해 욕을욕을 해 댔다.
“키드라가 데네브를 납치한 채로 다시 지구로 들어갔다는 말이지?”
“예예, 제가 확인까지 하고 왔습니다.” 
오르트 대제 앞으로 곧장 날아간 왕눈깔은 거짓말까지 보태어 구체적으로 보고 했다.
“수고했어. 앞으로 너는 내 지시만 받는다.”
“옛, 목숨 바쳐 대제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왕눈깔은 초고속 승진을 했다. 대제의 어깨 위에 앉는 특권까지 받은 것이다.
“해왕성을 함락했습니다.” 
대장 군관이 달려와서 보고 했다. 대장 군관 고로콤은 왕눈깔과 눈이 마주치자 째려보았다. 새로운 경쟁자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천왕성으로 진격!” 
오르트군은 우주 협곡에 검정 물감을 자꾸 풀어놓듯 영역을 확장시키며 동쪽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또르르르.”
“이제는 천왕성까지!” 
알마크는 알테어 우주 국경 수색 대장으로부터 통신 보고를 받다가 벌떡 일어섰다.
“3군단은 어디까지 진군했나?”
“목성을 지나고 있습니다.”
“수시로 보고해.” 
우주 군단 총사령관 알마크는 흰 유니콘을 타고 카니스별을 향해 급히 날아갔다.
“의장!”
“깜짝이야. 연락도 없이 웬일이시오?” 
또 졸다 깼는지 카니스가 크고 깊숙한 의자에서 눈을 비비며 알마크를 바라보려 애썼다.
“재가를 받으신 것으로 아는데 왜 보내주지 않으시오?”
“아, 그거 말이오. 카노푸스가 출장 중이라 늦어지고 있었소. 돌아오는 대로 즉시 보내려 했소.” 
카니스는 지구에 있는 1급 기밀 표시를 우주 박물관으로 옮긴 다음에 알마크가 말하는 명령서를 보내 주려던 참이었다.
“지금 제게 주시오.”
“전쟁을 앞두고 군단장들에게 격려해 주기 위해 차 한 잔 하려 하는데 내일 받아 가시면 안 되겠소?” 
카니스는 가능하면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이보시오, 의장! 오르트가 우주 협곡에 벌써 진입했단 말이오! 태양계의 별들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있소. 한시가 급한데 무슨 내일이란 말이오?”
“하루 정도의 시간이야 태양 수비대가 잘 막아 줄 것입니다. 나는 총사령관과 우리 군의 방위 능력을 믿습니다. 자자, 그러지 마시고 거기 좀 앉으시오.” 
알마크는 의자에 앉았다. 마음이 급하지만 카니스의 의도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의장의 태도로 보아 단지 행동이 느리고 게으른 것만이 아닌 석연치 않은 무엇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가 받으러 갔을 때 성하께서 맛보라고 주신 차가 있어서 총사령관과 군단장들에게 대접하려 하오.”
“도르르르르.” 
카니스가 알마크와 가까운 테이블 쪽의 의자로 옮겨 앉았을 때 전화가 울렸다.
“잠시만 실례하겠소.” 
카니스는 비밀 통화를 하러 가기 위해 일어섰다.
“헛!” 
원래 자신의 자리로 뒤뚱거리며 돌아가던 카니스가 중심을 잃고 긴 소파에 나뒹굴어진 것이다. 팔을 뻗었지만 비밀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위치였다.
“의장님, 카노푸스입니다. 1급 기밀 표시를 옮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구 동물들의 방해가 매우 심합니다. 박물관장님이 바퀴벌레라는 놈들에게 공격받고 있습니다. 아악!”
“이 멍청아, 그걸 말하면 어떡해!” 
통화는 끊겼다. 전화기 속에서는 카니스 혼자 있는 줄 알고 카노푸스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한 것인데 그대로 들려나온 것이다.
“카노푸스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아니요. 카노푸스는 날파리만 봐도 시조새의 공격을 받는다고 엄살떨어요.”

<14면에 이어서> 
소파로 넘어지며 체면을 구긴 카니스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1급 기밀 표시를 옮기는 일이면 나도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으로 압니다만?”
“아, 그게 말이오. 으음, 그게 흠, 그게 말이오.” 
하얗게 변했던 카니스의 얼굴이 이제는 죽을상이 되어 흑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출동 명령서나 주시오.”
“아, 그럽시다. 차 대접은 다음에 승전을 축하할 때 하는 것이 역시 낫겠소.” 
카니스는 알마크가 더 이상 묻지 않자, 재빨리 말을 수정했다.
“이 공란에 전군이라고 사인해 주시오.”
“1군단이면 충분하지 않소?” 
알마크도 카니스의 약점 발견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고 있었다. 공란은 군 규모를 적는 곳으로 별들의 의장인 카니스와 우주 군단 총사령관인 알마크가 공동 사인하게 되어 있었다.
“패전하면 나야 당연히 옷 벗겠지만 의장께서도 탄핵을 면치 못하실 것이오.”
“음, 꼭 이겨 주시오.” 
카니스는 몇 번을 망설이다 우주 군단 출동 명령서에 알마크와 함께 공동 사인했다.
“제기럴, 제기럴. 카노푸스, 이 병신 같은 놈.” 
알마크가 우주 군단 총사령부로 돌아간 다음 카니스가 뚱뚱한 몸을 펄쩍거리며 흥분하고 있었다.
“야, 이 등신들아. 전화 좀 받아!” 
카니스가 번갈아가며 카노푸스와 아틀란티스 우주 박물관장에게 전화를 해 댔지만 통화 연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  제 6 부-1  ]
■ 사랑과 영혼

“헉헉.” 
쥐떼들과 새떼들 그리고 바퀴벌레 떼와 고양이 떼가 쫓아가고 아틀란티스와 카노푸스가 달아나며 광선총을 쏘고 있었다. 광선총이 발사된 곳은 공간이 펴지듯 동물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광선이 지나가면 물 채워지듯 빈틈없이 다시 모여들어 공격해 왔다. 둘은 허둥지둥 우주 박물관 비행선으로 달려가 재빨리 올라타고 문을 닫았다. 
“그만그만, 알았어. 포기할게.” 
동물들이 비행선으로 마구 달라붙으려 하자 두 우주인은 혀를 내두르며 이륙했다.
“저것들을 광선포로 쓸어버릴까요?”
“그건 안 돼요. 1급 기밀 표시가 망가지면 큰일이요?” 카노푸스가 땅을 향해 조준하자 박물관장이 귀한 유물이 파괴될까봐 얼른 막았다. 동물들은 지붕과 마루와 주변 풀밭까지 방화수류정을 가득 메운 채 지키고 있었다.
“꼭 누가 시킨 것처럼 동물들이 우리를 쫓아버렸어요. 이해가 안 가요.”
“우리 몸에 꿀을 발라 놓은 것도 아닌데 벌떼처럼 달려들었어요. 어유, 끔찍해. 나는 동물이 너무너무 싫어. 알레르기까지 있다고요. 에취, 에에췌!” 
아틀란티스가 빈손이 되어 우주로 비행하고 있을 때, 카노푸스가 불평하며 재채기를 해 댔다. 1급 기밀 표시에 모였던 수많은 동물은 아틀란티스와 카노푸스가 파헤쳐 놓은 곳을 모두 복구시켜 놓고 흩어졌다.
“고마워.” 
팔달문 식구들이 북수동 성당으로 들어가자 그냥친구가 기쁘게 맞이했다.
“너희들이 너희를 지키고 사람들을 지키고 지구를 지켜 내어 너희들의 친구를 슬픔에 밀어 넣지 않은 것 같구나.”
“너희들의 친구? 그러니까 우리들의 친구란 말이지? 그게 누군데?”
“이 바보, 누군 누구야. 그냥친구도 몰라?” 
길대장이 발가락으로 짚어가며 따지다 머리를 벅벅 긁어댈 때, 궁궁이가 턱 밑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면박을 주었다.
“아유, 요거 얄미운데 한 입에 삼켜버릴까 보다. 으헝!”
“엄마야, 쟤가 고양이고 내가 시궁쥐라는 것을 잊었어.”
“와하하하.” 
궁궁이가 얼른 그냥친구의 손바닥 위로 올라가버리자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동물이 모였던 것은 그냥친구의 고민 때문이었다. 그냥친구가 방화수류정에서 공사하는 자들은 시청 직원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자를 어딘가로 몰래 가져가려는 작업이라며 걱정을 했다. 그래서 팔달문 친구들이 작은 동물 연합군을 집합시켜 두 우주인을 지구 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냥친구는 이 안에 있어도 세상 밖이 다 보이나?”
“그러니까 하느님이라고 부르지.”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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