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정겸 (시인,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쉴 새 없이 퍼붓던 빗줄기가 멈추고 이제는 더위가 맹렬한 기세로 우리를 엄습할 것 같다. 지난 7월은 길고 긴 장마와 홍수, 고온 다습한 이상기온으로 많은 고충을 겪어야만 했다. 이것이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자연과의 섭리이지만 우리는 자연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로 인하여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은 갈피를 못 잡고 오로지 정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 경제는 추락할 대로 추락하여 골목상권의 붕괴라는 초유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치권은 아직도 당파 싸움중이다.

코로나 사태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 후유증은 우리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직장을 잃은 청․장년들은 실직이라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여잡고 오늘도 가족들을 위한 한 끼의 곡기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이 노출된 노동 현장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험한 일과 싸우고 있다.
아직도 피곤이 풀리지 않은 육체를 스스로 채찍질하며 새벽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조조할인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노동자들, 사막과 같이 불볕이 내리 쬐는 노동의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 죽음의 그림자가 도사린 대형 상가 신축 공사장, 아파트 건축현장, 도로, 교량, 터널 등 건설 현장에서 감독의 눈치를 봐가며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반 지하 현관문을 들어서며 생계 책임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이들, 힘든 하루였지만 가장으로서 위엄을 보이려고 피 멍든 등짝에 가족 몰래 파스 몇 장 붙이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잠을 청하며 지친 시간들을 녹여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고 일터로 나가는 것이 우리 노동자들의 일상적 생활이다.

70년대 세계적 명성을 떨친 스웨덴 팝 댄스 그룹 아바가 부른 무브 온(Move On)의 가사 내용에는 ‘부지런한 육체에 평화로운 영혼이 깃든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면서 후렴조로 ‘계속 나가라’ 한다. 보이지도 않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 쉬지 않고 죽도록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주문이다.

그럼에도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이렇게 고난의 행군을 걷고 있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오직 당파의 이익과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서로 헐뜯는 것도 모자라 거친 말싸움을 주고받는 등 저급한 정쟁을 일삼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민생과는 상관이 없는 작은 언행의 실수를 빌미삼아 물고 뜯으며 물 타기 한다. 지금의 현실을 어찌 보면 조선시대의 사색당파(四色黨派)의 원혼들이 되살아 다시 활개를 치는 모습이다.

당시 굶주림과 헐벗은 백성들을 외면한 벼슬아치들의 사색붕당(四色朋黨)정치는 정파의 이익을 위해 이 나라를 이념과 지역, 성별, 세대별로 이간질하며 갈기갈기 찢어놓고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이른바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 사색당파가 있었다면 현재는 여와 야로 나뉘고 여와 야는 주류와 비주류 나뉘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권력 암투가 한창이다.

우리나라 통치구조상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의원들이 모여 국민들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수행하는 유일한 입법기관이며 국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도록 헌법에서 막중한 임무를 부여했다. 그럼에도 국민의 안녕은 등한시 한 채 당리당략에 의해 국정 업무를 수행한 결과 민생은 나락으로 떨어져 국민들은 하루의 삶을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 나라의 위정자들이 국민과 민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나라를 격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주와 반복되는 정치보복으로 여와 야의 협치 정치가 사라진지 오래 됐다. 상대 당을 깎아내리고 폄훼하며 밟고 올라서야 직성이 풀리는 붕당정치는 일본에게 국권을 넘겨준 패망 조선왕국을 쏙 빼 닮아 가고 있다. 소위 국민의 권한을 위임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노동자들이 막장 같은 일터에서 어떻게 삶을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한 삶의 현장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몸서리치는 환멸을 느끼고 있다. 민심(民心) 즉 국민들의 마음은 통치(統治)가 아니라 국민과 더불어 함께하는 여민((爲民)이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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