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종 편집인
김인종 편집인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단체를 나열하자면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원, 수원예총을 흔히들 꼽는다. 각각의 단체마다 하는 역할이나 정체성은 다르나 수원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고 더 발전·응용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수원예총은 직접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연합해 만든 문화단체로서 확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수원예총은 1966년 제1대 김동휘 회장을 추대하면서 수원지부를 창설했고, 1969년 3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수원지부 인준을 받으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9개협회(문인, 국악, 사진작가, 음악, 무용, 연예예술인, 영화인, 연극, 미술)로 구성된 수원예총은 이후 1992년부터 수원예술제를 창설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는데 이를 수원예술인 축제로 계승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원화성문화제 또한 예총이 주관하는 큰 행사이며 수원예술학교, 수원예술인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원예술발전을 위해 역할을 해왔던 수원예총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고 정치적 풍파에도 휘말리면서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게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세간의 명성과 무색하게 제대로 된 사무실조차 없었으며 사실상 유명무실한 단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반등의 기회를 잡게된 것은 지난해 8월, 팔달문화센터가 개관되고 위탁운영 형식으로 활동 공간을 얻으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 3월 4일, 제18대 오현규 회장이 취임해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현규 회장은 수원토박이로서 지속적으로 수원과 예술발전을 위해 힘써온 원로이다. 그는 ‘온몸을 불사르는 연출가’라는 별칭처럼 인생 전반을 음악과 예술을 위해 살아왔다. 대학생 시절 영복여고 고적대 창설을 시작으로 주요 이력으로는 수원향토음악제, 50주년 ‘갈라콘서트’, 러시아 국제음악콩쿠르 ‘그랑프리’ 지휘부문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수원예총’ 회장직과 함께 ‘경기도음악협회’ 회장, ‘난파사업기념회’ 이사장직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수원예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겠다”며 “9개협회가 협력하고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가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원예총에서는 예술의 저변을 넓히면서도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수원시민예술단 3333’이란 프로젝트는 수원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3333인의 시민예술단을 조직해 ‘각종 문화예술행사에 초대 및 공연에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겠다’라고 했다. 또, 수원예술학교를 “수원예술대학(水原藝術大學)”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고 팔달문화센터 교육과정에 개설해 수준 있는 예술을 전수하겠다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오 회장은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이자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고 말했는데, 수원을 문화예술의 도시라 칭하고 있는데 정식으로 수원예총의 간판을 내 걸을 건물 하나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수원예술인회관’조차 없는 현실을 비판한 것으로 그는 임기 내에 이와 관련해 성과를 내고 싶다고 알렸다.

예술은 ‘창작자의 영혼을 아름답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표현하는 거울’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순수히 창작자의 역량에 따라 많은 이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현규 회장은 수원예술의 수준 향상과 더불어 변화를 추구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쇄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수원예술계가 긴 시간동안 고착상태에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지원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창출해내야한다. 그렇게 된다면 부가가치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끝없이 노력해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저절로 설 수 있는 무대도 많아지고 형편과 위상도 좋아진다는 의미이다.

오 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며 수원예술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그는 이미 음악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만큼 이제는 본인이 나고 자란 수원예술을 다시 부흥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의 좌우명인 “삶의 정점에서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서 여생을 마치리라”라는 문장처럼 수원음악계의 전설을 넘어 수원예술을 찬란히 빛낸 ‘큰 별’이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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