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 집엘 갔다가 평소 알고 지내는 지방의원을 만났다. 광역자치단체 의원인데 3선의 중진이다. 특별히 건네줄 인사말이 마땅치 않아 요즘 “의원 나리”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문을 트자 의원은 양쪽 손을 번쩍 쳐들며 손 사례를 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집행부나 선배는 공무원을 해봤기 때문에 의원들을 예우 하지만 지역구의 주민들은 그렇지 않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잔뜩 늘어놓았다. 이야기인즉 지역구에 내려오면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만 부탁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브로커인지 업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민원이 법규에 어긋나는 사항이라 어렵고 힘들다 설득을 하면 다음 선거에 출마를 안 할 것이냐며 은근히 협박성 발언을 하니 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태산 같다고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유권자인 주민의 말도 맞고 의원 말도 맞다. 광역자치단체 의원이나 기초자치단체 의원의 의정활동분야는 제도적으로 정립된 입법적 기능의 의정활동과 제도외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일상적 기능의 의정활동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의원들에 의해 의회가 구성되고 있으며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심의의결 기관으로써 조례의 제정 및 개정 폐지, 예산의 심의확정, 결산검사, 공유재산의 매입 및 설치, 처분. 그리고 기타 각종 법령의 권한에 의한 사항을 의결 하고 있는데 이런 유형을 제도적으로 정립된 의정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입법적 권한을 가지고 행하는 사무는 정례회 와 임시회에서 처리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원들이 의정활동에서 정작 중요한 업무는 제도외적 의정활동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의 발전과 지역주민, 단체들을 위하여 실제로 수행하는 대민서비스를 말한다. 지방의원들이 수행하는 대민서비스란 자신의 지역주민들을 위해 얻어 낼 수 있는 각종 편익과 혜택을 의미한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주민들의 개인문제에 관하여 서면으로 응답해 주거나 해결 방법을 연구 모색하여 답변 하는 것이다. 지역의 민원은 일반적으로 자치단체에서 법규를 근거로 하여 처리하는 일정한 원칙과 틀에 의한 민원도 있지만 지역의 환경오염, 치안, 교육, 각종 기반시설의 확충 등 제도권 밖의 다루기 힘든 민원 등 그 요구 사항은 각양각색이며 한계가 없다.

과거에는 어떠한 민원에 대하여 의원이 이의를 제기하며 지방자치단체에 민원 해결을 요구 할 경우 의원 개인과 관계된 사안이거나 특정이익 단체에 혜택을 주는 사안으로 간주 되어 민원관련 공무원들에게 오해를 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행정에 대한 욕구는 다양해지고 현재의 환경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도 날로 증가함에 따라 의원들의 지방행정과 관련된 활동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자칫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에 대한 간섭으로 비춰질 염려가 있다. 이로 인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과 지방의원들 간에 미묘한 신경전은 물론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고질적 민원이거나 미제(未濟) 민원일 경우 각 지역의 의원들은 민원과 관련된 현장에서 주민들과 맞대응하며 완충적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주민들이 요구하는 지역 현안의 민원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개입하여 관련 공무원들이 현황을 파악하고 예산을 투입,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것이 지방 행정의 원칙이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과 지방의원은 주민들에게는 똑같은 심부름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방지치단체의 공무원들은 지방의원들이 왜 지역 민원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며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바라며 이를 염두에 두고 상생의 마음으로 의원들의 요구에 적극 협조하는 것도 주민을 위하는 길이다.

이유야 어떻든 지방의회는 주민의 대의 기관으로서 법규적 테두리 안에서 집행부에 대한 견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소속된 지방의원 또한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지역 주민을 위하여 성실이 직무에 임하는 것만이 건전한 지방정부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