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와 춤은 만세, 만세, 만세 행진이다. 한 끼 밥은 구걸할 수 있어도 나라를 구걸할 수는 없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수원시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여성을 주제로 한 '3·1운동과 여성'이라는 학술대회다. 때마침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가 발간한 '조선미인보감'에 3·1운동에 동참한 수원기생 33명의 사진이 발견됐다. 수원기생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어 다행이다. 나이가 15세~23세다. 일제강점기 1919년 3월29일 수원기생 33명이 수원화성 봉수당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일제가 화성행궁을 훼손하고 병원을 지어 건강검진을 실시했다. 치욕적인 민족차별로 수치스런 검사였다. 기생을 떠나 여성에 대한 일제의 인권 침탈 수준이었다. 조선 왕의 상징인 화성행궁을 무너뜨리고 병원을 차렸다. 정조대왕의 사당격인 화령전에 자혜병원을 설치됐다. 얼마 후에 화령전에서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으로 옮겼다. 이 역시 문화말살이다. 기생들이 분기(憤起)했다. 수원기생들의 3·1운동은 단순한 만세운동이 아니다. 일제 식민통제에 대한 저항이요,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적극적 행위다. 여성들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시대적 상황을 자각하고 스스로 혁명의 주역으로 일어났다. 전통사회에서 남성의 그늘 밑에서 '숨은 존재'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이 전면에 나섰다. 3·1운동의 의미를 더 짙게 한다. "우리 여자가 없으면 세계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우리 민족을 구성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광복군 오광심의 말이다. "구국의 책임이 어찌 남자들만의 몫이겠습니까? 우리 3천만 한국민족가운데 절반이상이 여성 아닙니까? 남녀의 역량을 합하여 각기 맡은 바 직분과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세계, 진선미의 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여성독립운동가 방순희는 말했다.
 수원기생 만세운동 주모자는 수원예기조합 김향화다. 그녀는 기생들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기생들이 주저하지 않고 함께 일어섰다. 만세운동의 주변인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로서 당당히 일제와 맞섰다. 그 무렵 엄혹한 상황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래서 선조들이 자랑스럽다. 수원기생들은 누구보다도 조선의 전통적 명분을 가지고 있던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 나라를 걱정하며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자문하매 부끄러움에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찼습니다."라고 김구는 말했다. 안창호는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라고 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성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자기 본명을 자기도 잊곤 했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숨어 활약한 김규식의 말이다. 표면에 나타난 무대가 전부는 아니다. 막후(幕後)라는 것이 또 있다.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역사를 창조하고 지휘하는 작가나 연출가가 있듯이 일제에 항거한 여성독립운동가가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지만 아직도 사초(史草)에 묻힌 여성독립운동가의 광맥을 찾아내야 한다. 항일투쟁에 생애를 바친 숱한 여성들의 잊힌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기생은 우리나라만 쓰는 호칭이다.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와 춤 따위로 흥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를 일컫는다. 예기(藝技)이다.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학문도 겸비한 다재다능한 존재다. 수원은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시위를 한 지역이다. 개성, 파주, 강화, 김포 등지에서도 여성들이 앞장섰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여성들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추적이 계속 이어져야 할 이유다. 그것이 100주년을 맞이한 우리의 과제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망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큼은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 통사를 저술하는 까닭이다. 정신이 존속해 멸망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 박은식이 남긴 말이다. 3·1운동, 건국 100주년을 맞으면 곰씹어야할 명구가 아닌가. 여성들의 기록이 많지 않아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활약상을 헤아릴 수 없어 안타깝다. 밝혀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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