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기자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책에서 제목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제목이 좋으면 내용을 안 읽고 그냥 사는 안 좋은 버릇이 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제목 낚시'를 많이 당한다.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도 그렇게 샀다. 한눈에 봐도 장엄해 보이는 제목이다. '계몽'과 '변증'이라는 단어가 같이 들어가니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고 쓸데없이 현학적인 말로 무게를 잡는 것 같다.

괜히 있어 보이는 제목에 끌리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말은 안 해도 다들 본인이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비이성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는다. 이러한 지식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감각'으로 습득한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작 백 년 남짓한 기간에 경험한 감각으로 쌓아 올릴 뿐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 인류를 번영으로 이끈 지식의 축적이다. 부모에서 자식으로, 책에서 책으로. 이러한 지식의 전달과 축적은 인류 총 지식의 양을 늘려 인간이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게 했다.

지식의 축적이 문명을 이루고 번영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긴 했지만 인간을 더 현명하게 바꾸어 놓았는지는 의문이다. 인생은 돌고 돈다는 어느 종교의 순환론처럼 인간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 문명 단위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매번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가 부모님께 혼나고, 길고 힘든 다이어트보다 찰나의 행복을 가져다 줄 한 밤의 치킨을 택하며, '한 판만 더!'를 외치다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새어버린다.

개인의 단위에서는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 스스로 비참해질 만큼 멍청한 모습을 보인다.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선거에서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고, 그렇게 선출된 지도자는 멍청한 이유로 전쟁을 하고,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빠른 속도로 길거리에 내다 버린다.

계몽의변증법은 그런 전쟁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책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독일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유대인이다.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근대 과학과 기술의 정점에 섰던 독일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그 전쟁에 가장 힘 있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서양의 여러 나라가 참여해서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어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계몽의변증법은 가장 어두운 철학서로 꼽히기도 한다.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인간은 아무리 이성적인 척을 하려 해도 항상 신화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으로 돌아간다. 건축학을 발달 시켜 더 높은 건물을 짓고, 심리학을 공부해 무의식을 파헤치고, 생물학에 매진해 강화 근육을 만들어도, 그 모든 행위의 주체가 되는 인간은 더 강한 힘과 똑똑한 머리로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쳐 확실히 발전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선진국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게 문제다.

그렇잖아도 서울이 포화상태라서 난리인데 언제까지 중앙 위주의 정책을 펼칠 건가? 이제는 K-방역처럼 우리나라도 독자적으로 사고해서 실천할 힘을 길러야 한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방식이 아닌, 다 같이 잘 살기 위한 방법이라야 한다. 과거와 같은 방법을 택하면 단순히 늦게 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퇴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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