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칼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예술은 흐느끼는 인간을 안아준다.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대안공간 눈’ 갤러리를 찾았다. 어릴 적 뇌성마비로 태어나 내적갈등을 겪었을 김준호 작가의 첫 개인전을 보기 위해서다. 5년 전부터 글을 쓰던 작가에서 볼펜화가로 전업한 작가의 첫 전시회다. 글이 사유로의 침잠(沈潛)이라면 그림은 탈출이다. 그의 탈출은 손으로 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입술에 펜을 움킨다. 고개를 숙인다. 도화지를 마주한다. 도화지에 펜이 닿는다. 숨이 퍼진다. 짧은 선을 모으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선이 숨과 맞물린다. 하나의 생태를 이룬다. 펜을 내려놓는다. 그림을 지켜본다’ 그의 작품 ‘없는 굽의 화분’에 담긴 작가의 글이다.


갤러리 한 귀퉁이에 그가 사용했던 볼펜 무더기가 쌓여있다. 손과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 얼마나 힘든 작업을 견디어 냈을까. 입으로 펜을 물고 작업하는 영상물을 보니 왠지 마음이 찡하다. ‘대안공간 눈’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시프로그램이라서 그의 첫 전시회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장애를 극복하며 삼일중을 거쳐 창현고를 다녔다. 주위 학생들이 편견 없이 잘 도와줘 특수학교도 아닌 일반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교사와 동료학생들의 도움이 큰 듯하다. 33살의 그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15년 지기(知己) 친구가 써 놓은 ‘전시에 부치는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너무나도 손쉽게 획(劃)을 치고, 그 획으로 짐짓 예술인임을 뽐내다가 너무나도 손쉽게 획을 접는 그런 류(類)의 역정을 뽐내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의 한 획을 구성하는데 있어 그 누구보다 깊고 은밀한 역정을 행한다. 그 은밀하고 깊은 역정은 무엇일까?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를 갈고 닦아 왔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 공간에 펼쳐져 있다. 작가가 여러분에게 보내는 획이 짐짓 여러분들의 마음에 켜켜이 쌓이는 굳건한 역정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적고 있다. 삶의 길목에서 가장 좋은 특효약은 친구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동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돕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손상과 질병을 구별한다. 손상은 장애나 결핍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한다. 독특한 감수성이고 개성이다. 손상은 새로운 실험을 자극한다” 며 전시기획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어서 “이 전시는 손상된 몸의 언어와 문법에 집중한다. 손상된 손의 역할을 입이 대신해 신체 경험을 완성하는 몸을 지켜본다. 정상이나 극복의 관점에서만 생각했던 손상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준다”고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반갑다.


희망은 생명이다. 그가 초장에 겪은 시련과 절망은 깊었을 거다. 이제껏 좌절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버티며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꽃을 피워냈다. 종이에 잉크 펜을 입에 물고 너끈히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여기까지 온 것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인가.


우리 주변에는 김준호 작가와 같은 장애인예술인이 많다. 우린 넘치는 정을 가족에게 쏟아 정작 낯선 타인을 돕는 데는 인색하다. 남 돕는 일과 행복은 선순환 관계다. 이들에게 작업공간을 만들어 줘서 예술 활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재활의 의지를 북돋아 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결속력과 상호 신뢰가 높아진다. 수원시의회에서는 수원장애인예술인을 위한 지원조례를 제정해 이들을 뒷받침해 줄 필요가 있다.


장애인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장애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날이다. 누구나 비중 있고 영향력이 큰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동질감을 유지하고 안도감을 용기로 승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 ‘당연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장애인예술인 전시회를 찾아 그들의 예술세계를 감상하는 것, 그것도 사랑으로 안아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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