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칼럼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책은 저자와 독자의 두뇌를 이어주는 끈이다. 책을 통해 저자의 두뇌 속 경험이 독자의 두뇌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잘 쓴 책은 독자의 두뇌를 크게 뒤흔든다. 두뇌가 흔들리면 삶이 흔들린다. 백서에는 날 것 그대로 들어 있다. 많은 책의 홍수 속에 그대로 파묻히기 쉽지만 정리된 책은 영원히 남는다. 역사는 기록된 것만으로 기억된다.
수원은 기록하는 도시다. 수원시의 독특한 시정철학이다. 시의 주요 시책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추진하면서 빚는 시민과의 갈등, 이를 해결하는 과정, 숨겨진 이야기들을 묶어 뒷날 교훈으로 삼는다. 자랑의 백서가 아니다. 깨달음의 백서요 이어짐의 백서다. 기록을 통해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행정의 교과서요 투명행정의 보고서다. 해마다 평균 4권이상의 이런저런 백서가 쏟아져 나왔다.


백서란 정부 각 부처가 특징 사안이나 주제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책이다. 지방정부마다 연간으로 시정 백서를 발간하지만 수원시처럼 다양한 사업부문에 걸쳐 많은 백서를 발간하는 경우는 드물다.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던 ‘흙탕물 수돗물 사건’이 빌미가 돼 수질오염 사고백서가 수원백서의 효시다. 그간 출간된 백서만도 36권, 마을기록도 12권에 이른다. 메르스 사태를 극복한 메르스 일성록,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 백서, 정조 8일간의 수원행차,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백서, 생태교통수원 2013문화백서, 수원 컨벤션센터 백서, 근대수원100년, 월드컵 백서 등 다양하다.


이제껏 나온 백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선경도서관은 ‘수원을 읽다. 수원학 도서 100선’ 전시를 이달 말까지 1층 로비에서 열고 있다. 선경도서관의 특화자료인 수원학 자료실의 소장도서 가운데 수원의 기록물 중심으로 선별한 책들이다. 단순한 자료전시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다. 전시구성은 수원 마을지, 정조시대 수원의 기록, 근대수원의 기록, 현대수원의 기록, 환경, 관광, 스포츠 등 여섯 개 주제로 나눠 시민들의 이해를 쉽게 하도록 꾸몄다. 기록물들은 단순히 시정 백서처럼 행정관련 자료에 머물지 않고 수원의 역사와 문화, 체육 등 다양한 영역의 기록물이라 더욱 값지다. 


수원시는 지난해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제5회 대한민국지방자치박람회에서도 우수정책으로 ‘수원 기록물’을 전시해 단연 돋보인바 있다. 수원은 그저 수원이 아니다. 다른 도시와 다르다. 수원의 얼굴이자 심장인 수원화성을 건축한 설계도가 그대로 존재하는 도시다. 축성과정이 꼼꼼히 담겨진 ‘화성성역의궤’는 바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가름하는 살아 있는 증거물이었다. 해마다 개최되는 수원의 대표문화축제에 펼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도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존재해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배다리 건너 시흥행궁을 지나 수원화성행궁을 거쳐 화성 융릉까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게 만든 기록물이다. 이 역시 수원만의 자랑이다.


기록은 한 발자국 먼저 다가온 미래다. 지난날의 과오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면 같은 문제는 잇따라 발생하게 된다. 충실한 기록과 정보 공개는 민주주의 뿌리다. 수원시가 시정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생활과 밀접한 주요시책의 기획 단계, 추진과정, 갈등해결과정, 비하인드스토리 등을 스토리텔링형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어찌 보면 기록이 바로 행정혁신의 첫걸음일 수가 있다. 기록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준거(準據)가 되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한 투명한 공개는 시민 참여를 불러 모은다. 세상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만은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세상이다. 기록은 보이지 않는 사연과 내막을, 실존의 은밀한 비밀을 그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이 시간을 내어 ‘수원학 도서 100선’ 전시장을 찾아가 수원을 읽어야 할 이유다. 그것이 수원시민의 알 권리요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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