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태어 날 때부터 직업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한 집안의 내력이나 ‘家風·家業(가풍·가업)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에 상당한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수원에는 ’최극렬‘이란 그야말로 ’極烈(극렬)‘하게 ’뼛속‘까지 ’商人(상인)‘인 인물이 있다.
그는 군사독재가 절정에 있었던 80년대 중반,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에 뛰어들며 치열하게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아버님의 가업을 이어받아 상인사회에 뛰어들자마자 그를 기다린 건 상인들의 열악한 현실이었다. 사회현실은 대기업이 ‘수출드라이브정책’을 추진하는 국가 기조를 빙자해 막강한 자본과 거대 조직으로 전통시장이나 지역의 골목상권까지 무참하게 짓밟고 있던 시기였다. 이에 분연히 일어서 거대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사나이가 ‘최극렬 수원시상인연합회장’이었던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경기도상인연합회장’으로서 영세 상인들을 위해 재래시장 특별법을 재정하는 기초에 기여했고 전국상인연합회장으로 이명박 정부 때는 지역 상인들의 생명줄 같은 ‘상생·유통법’을 국회 앞에서 단식을 통해 관철해 내기까지 한 우리나라 상인들의 대부 역할을 한인물이다.
또한 전통시장만을 위한 ‘산소’같은 ‘온누리 상품권’과 상인들의 ‘자생’에 필수적인 그 유명한 ‘미소금융’까지 이끌어 낸 경이로울 정도로 철저하게 상인들을 위한 인물이기도 했다.
2015년 수원역에 들어선 ‘롯데몰’과 ‘AK플라자’를 상대로 2년 동안 전문적인 검증과 논리적인 자료로 상당액수의 전통시장 ‘상생자금’이란 보상금을 이끌어낸 바도 있다. 결국 최극렬 상인회장의 삶을 돌이켜보면 상인으로 시작해 상인으로 성장하며 상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뼛속까지 철저한 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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