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상대방과 협상해서 만들어진 합의의 산물”

학생운동·사회운동하며 민주화 과정 겪어
11년간의 검사직 내던지고 정치인의 길로
20대 총선서 수원 입성…당 대변인 등 역임
국회 법사위서 고군분투… ‘희망의 정치’ 펼쳐
탄탄한 사회보장과 기본소득 개념 도입할때
‘신분당선 연장·군공항 이전’ 잘 진척돼 희망적

백혜련 국회의원(더민주 수원시 을)
백혜련 국회의원(더민주 수원시 을)

쌀쌀한 영하의 새벽공기가 볼을 스치던 출근길이었다. 하지만 초겨울을 재촉하던 날씨가 오후 들어 풀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날씨처럼 우리나라 경제에도 어서 빨리 훈풍이 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으로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를 챙기며 사무실을 나섰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구운동지역의 빡빡한 주차현실로 주차공간을, 진주를 캐듯 백혜련의원 사무실 주위를 도느라 약속한 오후 4시를 향한 시계바늘이 ‘간당간당’하고 있었다.

턱에 찬 숨을 밀어내며 간신히 시간에 맞춰 권선구 구운동의 건물3층, 백혜련의원 사무실로 들어섰다. 홀에 서있는 백의원을 발견한 순간, 첫 인상은 선이 참 좋다는 느낌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필자는 본능적으로 선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한창 그림에 빠져있던 시절엔 첫 선이 빗나가면 어지간해선 캠퍼스를 접곤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그랬었다. 그래서 그런지 상쾌하고 샤프한 첫 라인의 잔상이 인터뷰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었다.

카메라를 조립하며 배경을 살펴보니 보좌관들의 움직임이 매우 활기차면서도 차분하다. 게다가 정연한 느낌도 함께 따라온다. 무언가 잘 정리된 분주함이랄까!
여러 인사들이 방문하는 속에서도 별 흐트러짐이 없는 포근한 사무실분위기였다.

한 템포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제 서야 백혜련의원을 세심하게 볼 수 있었다.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 그리고 야당과 현안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여 전사’ 백다르크의 모습이 아니다. 그냥 가녀린 늦가을 코스모스 같은 모습의 여인이 화사하면서도 정갈한 모습으로 맑게 미소를 띠며 앉아있다. 방송에서 보이던 날카롭고 뾰족했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의문이 인터뷰 도중 풀리기는 했지만 필자가 생각하던 ‘잔다르크의 모습’은 ‘잔상’으로만 남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백혜련 의원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6살 때 서울 삼양동으로 가족이 모두 이사를 했다고 했다. 고향의 추억이라면 집근처로 개울이 흐르는 무척 전원스러운 마을 풍경이 아련하다고 했다.

순간 맑고 청명한 가을, 길가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냇가 뚝 방에 청순하게 서있는 ‘한 시골소녀’가 연상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동덕여중을 거쳐 작가나 화가들이 상징처럼 쓰고 다니던 ‘빵떡모자’를 쓰고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잠시 입었던 창덕여고를 나왔다고 했다. 당시 교복자율화 바람이 거세던 시기의 중간에 있었다고 했다. 드물게 교복과 사복을 같이 입었던 세대다.

대학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고 얼마 후 고대 사회학과로 전과를 해 마쳤다고 했다.
약간은 특이한 케이스다.  필자가 아는 여검사 출신의 백혜련 의원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팩트였다.

학창시절은 학생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노동운동에 열심이었다고 했다. 그 당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군사정권에 의해 왜곡되고 통제되어 폭동으로 알려져 나중에 ‘처절한 민주화 운동’이란  사실을 알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분노했고 87년 6·10항쟁을 겪은 세대들은 당시 동일한 정서가 공유되던 시기라고 했다.

‘激浪(격랑)’ 같은 이념 속에 ‘疾風怒濤(질풍노도)‘의 시기가 자연스럽게 쇠퇴하며 자신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고민을 껴안을 즈음, 男·女를 떠나 실력으로 당당하게 승부하는 세계에 도전을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며 같은PD(민중민주주의)성향의 부군인 ‘박완기씨’(전국 경실련 정책실장 출신으로 현 시민사회연구소 연구원)를 만나 결혼, 신림동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부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심히 한 우물을 판 끝에 검사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검사의 길이 ‘正義具現(정의구현)의 尖兵(첨병)역할’이란 생각에 재미도 있었고 열심히 했었다고 했다. 당시 女검사의 비율은 1000명 중 28명꼴로 채 3%가 안됐다고 했다. 암튼 주목을 받는 위치였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男·女검사의 비율이 5대5정도라고 하니 ‘隔世之感(격세지감)’이 들만도 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근무를 하며 11년이 지난 후 대구지검에서 형사부 수석검사(부장검사 바로 밑 직급)로 재직 당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고 검찰본연의 자세보다는 정치공학적인 면에 휘둘리는 과거로 퇴행하는 검찰의 모습에 극심한 실망과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사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검찰 퇴직 시 검찰의 중립성이 훼손 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순수한 마음으로 올린  ‘사직의 변’이 왜곡되게 전달되며 커다란 사회적 파장까지 몰고 와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고 회고 했다. 그 당시도 지금처럼 ‘검찰개혁’의 열망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뜨거웠을 때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백혜련 의원은 검사직을 떠난 후 정치권으로 들어와 민주통합당 한명숙 당대표의 추천으로 안산에 출마하려 했으나 당시 야권통합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2016년 수원에서 20대국회의원(더민주, 수원을)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의정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백 의원은 여검사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해 날카롭게 핵심적인 질문을 하는 의원의 대명사로 부각되며 한때 당 대변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했다.

국회에서의 백혜련 의원은 당당한 여전사로 백다르크의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사위에서의 질문과 주장은 상대방의 논쟁과정에서도 철저한 명분과 논리로 무장해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고 때론 격렬한 논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국민들에게 뚜렷하게 각인 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스타일을 묻자 자신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女人(여인)”이라고 했다.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필자는 당시 국회에서 ‘孤軍奮鬪(고군분투)’하는 백혜련의원을 보며, 암울한 우리나라의 정치판에서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 란 안도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어 검찰 재직 시 어려웠던 점을 묻자 검사는 한 개인이나 집단의 有·無罪(유·무죄)를 가리는 자리로 그 결과에 따른 파장이 상당히 큰 까닭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며 여린 인간적인 면모도 보였다. 뉴스나 방송에서 보이던 ‘强骨(강골)’의 모습과는 달리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다.
‘정치인의 길과 검사의 길’의 차이에 대해서 묻는 질문엔 둘 다 국민을 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굳이 분석하자면 검사의 길은 사법 쪽에 치우치지만 정치는 훨씬 포괄적이고 어렵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건 스케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나 사상가 쪽, 선호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엔 서슴없이 ‘막스 베버’를 지명했다. 현대사상가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며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막스 베버’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래서 PD계열의 학생운동을 한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막스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을 써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1863)과 함께 인류역사 100대 사건 속에 들어가는 ‘두 권의 저술’ 중 한쪽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두 책은 자본주의라는 공통주제를 다뤘지만 내용은 상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간은 극적인 표현을 즐기는 필자는 자연 상태에서의 삶은 "외롭고 불쌍하고 불쾌하고 짐승 같고 짧다"라고 역설한 ‘토마스 홉스’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 또한 백혜련 의원의 ‘막스 베버’선호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정치란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가 아닌가 하는 필자의 질문인 ‘民生(민생)’에는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民生(민생)’이 정치화 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결국 ‘民生(민생)’도 정치인들의 ‘레토릭(수사)’으로 전락해 가는 현실을 우려한 것이다. 이어 정치계에서 가장 민감한 화두인 경제성장에 관해선 다가오는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의 출현이 일자리감소로 이어진다며, 사회보장을 통한 생존문제 부분에선 결국 ‘기본소득’의 개념을 거론하기도 했다. 

백혜련 의원은 지역구를 위해선 가장 시급한 ‘신분당선 연장문제’와 ‘수원 군공항 이전’ 문제 등을 특히 신경 쓰며 중앙에서 추진 중이라고 했다. 두 부분 다 현재 긍정적인 진행이 예상되며 지역구 교육문제에도 특히 신경을 쓴다고 했다.

벌써 6개의 체육관을 설립하는 예산을 확보했고 권선구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자녀들에 관한 근황을 묻자 건강하고 이쁘게 성인으로 잘 자라주어서 너무 고맙고, 아직도 부군인 박완기씨와 늘 자녀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인생과 정치에 대한 좌우명을 묻자 “초심을 잃지 말자”라고 했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할 때의 순수성과 열의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어 현실의 삶에 있어서는 ‘백 마디의 말보다는 실천의 중요성’ 을 강조하기도 했다.

백혜련 의원은 그렇게 바쁜 의정활동 중에도 본지에 1시간 가까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주었고 경쾌하고 진솔한 인터뷰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백혜련의원으로 인해 권선구 구민들이 좀 더 나은 지역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 같은 예감과 확신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또한 전문적이고 논리적이며 박식한 그의 지적 인프라와 끊임없이 배출되는 강인한 에너지가 기존의 정치인 백혜련을 넘어 무한히 진화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해서 “인재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과 애정이 합쳐져 탄생되는 하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인터뷰의 끝에 오는 포만감이 ‘아주, 아주’ 큰 행복한 ‘해거름 저녁’이었다.

<1면에 이어>


▲ 여검사출신의 정치인이란 희소가치가 의정활동에서 미치는 영향은?
-사회가 더 복잡해지고 고도화됨에 따라 전문가 출신의 정치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더욱이 국회는 입법 기관이기 때문에 항상 법을 다룰 수밖에 없고, 검사의 경험은 법을 분석하고 입법을 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양극단의 사고가 사회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상황에서 검사로서 체화했던 균형감, 합리성, 논리적 사고는 조정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검사뿐만 아니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한 경험이 소통과 공감에 있어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의회정치의 이상과 현실 정치의 차이점이 있다면?
- 정치는 각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과 가치를 바탕으로 상대방과 협상해서 합의의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인데, 현실은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만 존재합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가 갈등을 오히려 양산하고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품격을 지켜야 하는 정치권이 자극적인 막말로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이를테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대해서 자유한국당은 장기집권용 악법이라고 반대하는 상황입니다.

장기집권용 악법에 대해 80%가 넘는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는 자유한국당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이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찬성하는 것인데 자유한국당만이 정쟁화하면서 반대하는 현실입니다.

반대를 하려면 합리적인 근거와 대안을 갖고 하는 것이 올바른 의회정치인데, 지금 우리 정치권은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소신이 딱 부러지고 강직한 의정활동을 하신다는 견해에 대한 소감은?
-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은 현실입니다. 30여 년간 학생운동, 노동운동, 검사, 국회의원의 역할을 하면서 제가 생각한 원칙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난 남편은 시민운동의 길로, 저는 검사의 길로 가며 늘 상호 존중과 신뢰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길이지만 남편은 시민운동에서 정의를, 저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에서 정의를 찾고 지키고 싶었던 것입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검찰을 비판하며 검사직을 그만둔 후 검찰개혁만큼은 꼭 해내겠다는 일념 하에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만약 불의와 타협을 한다면 정치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 질문이 예리하고 정확하다는 평가에 대한 견해는?
- 팩트에 기반한 질의, 정확한 근거에 의한 문제제기를 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레토릭’인데 저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정치적 수사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현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패스트트랙에 대한 평가는?
-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법안의 내용과 절차가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논의를 위한 회의체 구성에 합의한 상황에서 뒤로는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행태는 결국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은 제가 만든 안이든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만든 안이든 모든 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을 하자는 것인데, 자유한국당은 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반대만을 고수하는 상황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자유한국당이 되지 말고 제1야당답게 책임 있는 모습 보이길 바랍니다.


▲ 최근 ‘패스트트랙 충돌’과 관련해 검찰출석, 참고인 조사를 받으신 소감은?
- 법안 발의를 방해받은 피해자이자 사법개혁특위의 간사로서 회의 진행을 이끌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한 참고인으로서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 받은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제가 아는 범위에서 구체적이고 가감 없이 진술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에 대해 ‘날치기를 막은 정당방위’라는 비상식적인 궤변을 말씀하던데, 이러한 적반하장의 태도가 국민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행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일단 본인들이 주도해서 만든 국회 선진화 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하는 것이 진정 책임지는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을 어긴다는 것은 자격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 신분당선 연장선 최종진행과정과 수원군·공항이전에 관한 의원님만의 해법은?
- 신분당선 연장선의 경우 정부가 먼저 시작한 사업이자 지역 주민이 5천억 원이라는 광역교통부담금을 낸 원인자 부담 사업으로 주민 간 또는 지역 간 갈등으로 사업 진행이 안 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용산에서 호매실까지 하나의 노선을 공사 편의와 재원 부담을 줄이고자 네 개의 구간으로 나누면서 제대로 된 경제성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 이 부분에 대해 정부를 설득하고 문제를 지적하면서 다시 한 번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게 됐고, 예타 제도 개선을 통해 정책성 평가 비중이 다양해지고 높아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 것입니다.

수원 군공항은 지역간 첨예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해결의 속도가 더딘 것입니다. 예비이전후보지가 단수로 선정되었는데도, 이전후보지선정위원회 구성 등 후속절차가 아직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국방부의 이러한 태도를 지적하고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민군통합공항 등 다양한 방식도 고려해봐야 하며 더욱더 다각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지역구인 수원시 권선구의 개발이 전반적으로 낙후된 점에 대한 대안은?
- 발전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프라 구축에 집중함으로써 발전의 속도를 더욱 높일 것입니다.

특히, 교통, 교육, 복지는 기본 밑그림의 핵심이 되어야 하며 신분당선 연장선이라든지, 성균관대 등 지역의 고등교육기관과의 R&D 협업체계 구축, 학교 환경 개선 사업, 대형종합병원 신축 등은 발전의 시작이면서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인공지능·바이오·로봇 등 첨단산업 특화지역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 지역구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항상 보여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질책 그리고 격려에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수원(을) 지역의 발전과 사회개혁을 위한 의정활동에 집중했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런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제게 주어진 소명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백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라는 초심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고, 늘 채워나가는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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