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판이 조국으로 시작해서 조국으로 끝나고 있다. 연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수만, 아니 수십, 수백만의 인파가 결집해 서로의 주장으로 나라를 양분하고 있다.

흑과 백으로 나 뉘 듯 양 진영의 논리가 극과 극을 이룬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일반적인 생각과 사고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필자는 이런 사태에 대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시시콜콜’의 쟁점논리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식논리’로 풀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상식이란 아주 단순한 차원의 옳고 그름이며 경우고 인간이 사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전반활동을 통한 수많은 모임과 참여 속에서 여러 차원으로 친구관계도 형성되고 사회적 인과관계가 맺어진다.

인간은 살아오고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방식이 틀리고 다르다 보니 어느 새 사회에서 만난 이들이 敵軍(적군)이냐 我軍(아군)이냐를 따져야 할 경우도 생기고 그 안에서 크고 작지만 感情(감정)의 칼끝에 날이 서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독을 품어 상대를 아프게 하기 한다.

멀리 그리고 길게 보면 다 부질 없는 짓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이 다른 눈앞의 인물들로 인해 아무리 초연하고자 마음을 다잡아도 밴댕이 같은 속내로 화를 다스리기도 힘들고 애써 태연한 척해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벌겋게 상기된 표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차피 삶의 기준을 내안의 정의에 맞추어 놓고 본다면 작든 크든 상대방과 부딪히기도 하고 때론 반목하며 갈등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대부분 뜻과 목표가 같으면 동지란 이름으로 어울리고 부분적으로 다르면 일반적인 남이지만 상반되는 경우는 적으로 갈리며 갈등과 투쟁의 길을 가게 된다.

삶의 방식이 다양하듯 목표도 다양하고 질도 다양하다. 우린 이제부터 다양함의 세계 속에서 더불어 존중의 방식도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이든 동지든 결국은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에서 부딪히고 뒹굴며 공통분모의 살을 섞어 나가야 할 인연의 상대들이다.

넓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하고 내 가족을 위하며 주위를 위하는 길인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정말로 용서가 안 되고 용서를 해서도 안 되는 이들이 가끔씩 주위에 존재할 때가 있다. 팔자가 사나워서 이놈의 팔자에 무슨 平和(평화)를 바라겠느냐 만은 경우를 벗어나서 극도로 파렴치하거나 극악무도 할 경우에는 그것이 적이든 동지든 간에 용서를 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와 정체성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은 ‘조국’이란 명제를 놓고 극렬하게 이분법으로 갈리고 있다.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 한다 손치더라도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건 정치의 부제를 빼놓곤 달리 설명 할 길이 없다.
문득 이런 문구가 생각난다. “가짜 친구는 소문을 믿고 진짜 친구는 나를 믿는다”란 문구다.


또한 “같은 목적으로 이익을 탐하는 자와는 투쟁이 생기고 같은 걱정을 하는 이들과는 단결을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같은 걱정을 할 수 있게 정치지도자들이 제발 슬기롭게 이끌어주길 바란다. 정치인들과 ‘니조국 내조국’으로 인해 머릿속이 지진난다. 도라 버리겠다.

김동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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