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시인이 네 번째 시집『슬픔의 바닥』(문학들 刊)을 펴냈다. “스물넷의 나이에 피안의 별이 된 아들 김한글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라는 헌사를 붙인 이번 시집은 몇 해 전 그가 겪은 참척의 슬픔들로 가득하다. “슬픔의 바닥을 보지 않고는/슬픔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로 시작되는 표제작「슬픔의 바닥」을 비롯하여 「소나무 아래 너를 묻고」,「불을 삼킨 나무처럼 나는 울었다」등 시집의 도처에서 그가 지내온 지난한 시간들이 악수를 건네 온다.

군부독재와 광주항쟁을 겪고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교육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던 시인은 고향 해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동안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신발의 행자』,『바람의 사원』등의 시집을 펴냈다. 사람답게 사는 평등의 세상을 꿈꾸며 불교적 정서가 강한 ‘자아 찾기’의 시적 경향을 보여주었던 시인에게 참척의 아픔은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이번 시집은 그 충격의 소산이자 시인의 새로운 시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시인의 그 슬픔이 오체투지로 생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구모룡은 시집의 해설에서, “시인의 삶과 시적 역정은 온전히 슬픔과 고통을 껴안는 자아나 이러한 자아를 내려 보는 영혼의 표정을 만나게 한다.”고 적었다. “슬픔의 바닥으로 침몰하는 우울한 자아 대신에 생의 이치를 품는 영혼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번 시집을 이해한 것이다. “꽃피는 자아에서 방랑하는 영혼으로 시적 지향이 이동하고 있다.”

박병두 문학평론가는 사랑하는 아들과 준비 없는 이별의 회한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시인의 나직한 음성에서 슬픈 곡조와 알 수 없는 서러움들에 대해 동행하지 못한 직무유기로 인간적인 책임과 의무를 갖게 된다면서 시인 혼자서 남은 더 많은 시간을 감내해야 될 시계에 더 가슴저리다며, 고난의 난 속에 초매의 바윗내에 기대보자며, 인생무상처럼 닥치는 사고와 변고는 시름으로 풍전등화처럼 지나가길 애달프게 기도한다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황지우 시인은 “그의 시집은 어쩌면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모두의 보편적 슬픔에 바쳐진 것이며 김경윤은 모두를 대신해 울어 주는 자, 대곡자(代哭者)”라고 했다. 이번 시집의 슬픔이 개인적 아픔에 머물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슬픔으로 승화되는 과정에 있음을 주목한 것이다.
김경윤 시인은 흔히 ‘땅끝 시인’으로 불린다.

해남에서 태어나 해남에서 살며 해남을 노래해 온 대표적인 시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1957년 해남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무크지『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민족시인 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으로도 활동해 왔다. 그런 그가 올해로 서른세 해 동안 땀 흘려 일해 온 정든 교직을 떠난다.

이번 시집은 그의 네 번째 시집이자 정년퇴임 기념 시집이기도 하다. “분필밥 덕분에 춥고 힘겨운 날 잘 견디며 살았다.” “시 덕분에 슬프고 외로운 날들 잘 견디며 살았다.”고 그는 이번 시집 ‘시인의 말’에서 소회를 밝혔다.

시인은 1957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신발의 행자』, 『바람의 사원』 등이 있고, 시해설서 『선생님과 함께 읽는 김남주』가 있다.
김인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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