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복지를 건드리면 뒤집어지고 미국은 세금을 건드리면 난리가 난다고 했다. 복지와 세금은 상호불가분의 관계다. 복지와 세금은 양날의 검이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복지와 세금은 늘 ‘삐그덕’ 거리고 늘 대립한다. ‘제로섬‘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 공정과 공평이 보편화되면 자본주의는 사그러들고 사회주의 성격의 체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현재 북유럽의 절대복지국가들이 그렇고 프랑스가 그렇다. 하지만 사회적 강자나 기득권층들의 탐욕이 자본주의를 통해 만족되기 때문에 공평과 공정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이 결국은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체제의 잔인성과 슬픔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헌데 슬픔이나 눈물, 고통은 거의 약자들의 몫이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불평등을 기저로 한 “하나를 위한 열의 희생”을 토대로 존속하는 것이다.
“게을러서 가난하다”라는 말은 새벽5시 버스를 타보면 말짱 ‘거짓말이란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현 체제가 지닌 사회구조적 사슬이 ‘천형’처럼 가난을 잉태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조국사태도 ‘상류진보’의 길을 걸어온 조국이 짊어진 숙명일 것이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신데렐라와 유리 구두”처럼 먼 옛날 동화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을 조국도 알았을 것이다. 최소한 실패한 신데렐라는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조국은··· 그래도 필자는 조국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인 중 한사람이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면 ‘신자유주의‘가 된다. 신자유주의 안에는 낭만이나 철학은 없다. 현대국가가 자본주의를 거쳐 민주주의가 되고 이어 선진국이 되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헌데 인문학이 성숙된 자본주의는 불편하다. 고로 자본주의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인문학이 없는 사회는 ‘죽은 시인의 사회’다. 우리나라는 인문학대신 쩐(錢)의 학(學)을 중시하는 아주 탐욕스런 과정과 광기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현실이다. 아니 세계가 자본주의의 늪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나 중국이 공산주의란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이야 말로 지독한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미친 자본주의다. 북한이야말로 쩐이 신인 대표적 왕국이다.
그런 미친 자본주의가 소수의 배때지에 기름덩어리를 겹겹이 채우고 절대다수 인민들의 등가죽이 들러붙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미국도 한심한 자본주의다. 거지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다. 무릇 모든 살아있는 생물, 생명체들은 처먹어야 그 다음의 레파토리가 이어진다. 즉 굶으면 ‘디진다’는 말이다.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농업기술의 발달로 자급자족수준을 넘어 잉여 농산물이 쌓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산업사회로의 이동이 불가피했고 그 결과 대량생산이 유발됐다. 대량생산을 통해 경제력(國力)의 우위를 점하고 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물자를 대량생산할 대상들인 자원과 노동력이 끊임없이 충당되어야 했다. 그래서 침략이 필수적인 제국주의가 생겨났고 미개한 유럽이 세계의 변방에 있다가 산업화에 따른 재화의 힘으로 강대국(强大國)이 된 것이다. 그런 시스템을 잽싸게 벤치마킹한 일본이 당연하게 우리나라를 집어 삼킨 것은 너무나도 필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이 모든 선(善)과 악(惡), 선택을 합리화하는 최상의 수단이 쩐(錢)이고 쩐이 제국주의를 제끼고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자본주의는 불공정과 불평등이 없으면 그냥 시체다. 인간에게 절대 평등은 없다. 그러나 노력은 해야 한다. 쪽팔리게 ‘똥’싸는 기계는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초 대기자

저작권자 © 새수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