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 고희(古稀)를 맞았다. 지난 8월15일은 수원시 승격 70주년 기념일이었다. 시승격 이후 도시의 변화는 1949년 인구 5만의 ‘수원읍(邑)’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첫 19개 도시에 들어가는 ‘수원시(市)’로 등극(登極)한 날이다.
70년 동안 인구는 25배가 늘어난 125만 명에 이르는 전국 최대 기초지자체가 됐다. 당시 예산 43만원은 2조7천800억으로 엄청난 살림규모로 늘어났다.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70년 동안 수원의 얼굴은 다양한 색깔을 빚어냈다.
몇 년 사이에 조성된 광교신도시를 보면 ‘이곳이 수원이 맞나요?’ 할 정도가 아닌가. 1967년6월에는 서울 광화문 앞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명실상부한 경기도 수부도시로 도시의 위상이 확 달라졌다. 1997년12월에는 정조대왕이 세운 수원화성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서 자리매김하는 출발점이 됐다. 3년 전부터 서울 창덕궁을 출발하여 안양, 의왕, 수원을 거쳐 화성 융릉에 이르는 ‘정조대왕능행차 공동재현’을 수원시 주최로 완벽하게 재현하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시동을 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 본사가 자리하고 있어 수원시가 첨단도시로서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2002년 월드컵축구경기를 유치하면서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운동을 선도했다. 수원이 주도한 세계화장실협회가 유엔기구로 발돋움하여 우리나라 공중화장실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견인차역할을 했다.
2003년부터 2016년에 걸쳐 125만7510㎡ 규모의 수원1·2·3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첨단업종의 산업 클러스터 역할을 한다. 2013년엔 수원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 10구단 KT Wiz를 유치해 스포츠 도시의 반열에 올랐다. 올 3월,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기초지자체에 수원고등법원·고등검찰청이 개원되어 광역시급 위상을 갖췄다.
같은 달 광교호수 옆에 마이스(mice)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원컨벤션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처럼 수원시는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도시를 옹골차게 만들었다. 2011년 도심을 가로지르는 귀중한 자연공간 수원천이 되살아났다. 행궁동 ‘생태교통 수원2013‘ 국제행사를 유엔 헤비타트와 이클레이가 수원시와 함께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수원시는 다른 도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속살을 찌우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최초로 3선에 성공한 염태영 시장의 거버넌스(governance) 행정이 시민들의 호응이 얻고 있다. 좋은시정위원회, 도시정책시민계획단, 시민감사관, 500인 원탁토론, 주민자치회, 동장주민추천제, 수원화성문화제추진위원회 등처럼 시정 곳곳에 스며들었다. 8월13일 시청에서 시승격70주년기념행사로 ‘시민, 민주주의 그리고 수원’이란 주제로 시민대토론회가 열려 우수 거버넌스 성과 발표가 있었다. 자치분권의 초석이 될 ‘수원특례시’ 실현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70년이 수원에 거주하는 ‘주민(住民)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70년은 수원의 주인이 되는 ’주민(主民)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수원박물관에서는 열리고 있는 시승격70주년 특별기획전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 수원시 70년의 발자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또 다른 70년간의 감동을 안겨준다.
‘사람중심 더 큰 수원’을 위한 국제심포지엄도 국내외 석학들이 발제자로 나서 ‘수원 계획 200년, 성장 70년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열렸다. 미래를 위한 도시발전의 패러다임을 펼쳐 보인 자리다. 염태영 시장은 “수원의 지난 70년은 성장하고 팽창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70년은 시민과 함께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를 만드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8월20일 수원컨벤션센터 특설무대에서 ‘KBS열린음악회’ 5천여 명의 시민이 모여 시승격70주년, 생일 축하의 대미를 장식했다. 수도 서울의 기능을 분담하는 대도시로 성장한 수원이 아닌가. 수원시민이 자랑스럽다. 이 정도로 괄목한 발전을 이룩한 수원시민은 으스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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