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화성행궁 능행차시 수행원들이 쉬어가던 곳
새숱막으로 불리던 거리…지금은 차없는거리로 변신

 

장안문거북시장은 정조가 화성행궁 능행차시 영화역에 들러서 호위무사를 비롯한 수행원들과 잠시 쉬어가던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일행들과 막걸리나 음식으로 목을 축이며 “불취무귀(不取無歸)”란 정조의 유명한 건배사가 탄생했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 곳이다.
“취하지 않은 자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란 직역으로 늘 백성을 사랑했던 정조의 애민적인 호탕함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동 주변엔 영화역이 있었고 영화역은 수원화성의 북문인 장안문 밖 1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역의 건물인 영화관 등을 합해 모두 52칸의 큰 규모였다고 한다.
이 영화역은 물론 역 주변의 마을까지도 19세기 말 역참제도가 시행될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정조가 화성 축성 이후 한양의 남쪽에 소재하던 역참의 중심을 영화역으로 삼으며 서초구 양재역의 관사와 관원을 비롯한 역참 소속 주민들까지 모조리 이곳으로 이주를 시켰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자연히 이곳에 상인과 주민들이 몰리면서 번성하기 시작했고 정조 20년인 1796년 8월 29일 드디어 영화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근의 시장에는 영화역에 있는 말들을 키우는 마방이 있었고 18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상권의 형성은 개성과 수원, 안성을 잇는 ‘의주로(義州路)’가 바로 삼남대로 중 한곳이었다고 한다. 개성상인인 ‘송상’ 수원의 ‘깍정이’, 그리고 안성의 유기상인 ‘마춤이’ 등이 그것인 것으로 전해진다. 거대한 마방이 존재했던 영화역은 수원의 상거래 중심지 중 한곳으로 남게되었으며 그 곳에 존재했던 시장이 지금의 거북시장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그 시장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전해지지 않았었다고 하며 거북시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30~40년 정도라고 하는 데 그 곳의 넓은 땅을 한사람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사람의 행동이나 동작이 느려서 거북이란 별명이 붙었었다고 했다.
그 연유로 그 곳의 시장명이 지주의 별명이었던 거북이란 시장명이 생겨난 유래가 정설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장은 장안문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고 거리의 이름을 ‘새숱막’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한양여정에 지친 나그네들이 잠시 들러 막걸리 한잔으로 피로도 풀고 주모의 분내에 시름을 잊기도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새숱막거리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그 곳에서 차없는 거리까지 운영이 되고 있어 세월의 변화를 실감 할 수 있다.
김동초 대기자

장안문 거북시장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시장 명: 장안문 거북시장
- 소재지: 수원시 장안구 수성로382번길24(영화동)
- 대표자: 차한규회장, 임은재실장, 전화번호: 031-252-7800, 팩스: 031-243-2788
- 시장구분: 인정시장, 점포수: 139개, 종업원수: 259명
- 인정일자: 2008.11.19. 매장면적: 35.037㎡, 부지면적: 22.803㎡
- 관리자: 거북시장 상인회
- 취급품목: 농·수·축산물, 공산품, 음식점 등

저작권자 © 새수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