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교육감 “이제 과감한 혁신교육이 필요한 시기”
이재정 교육감 “이제 과감한 혁신교육이 필요한 시기”
  • 새수원신문
  • 승인 2019.06.0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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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교육감이 학교민주주의가 이루어질수 있게 학교가 학생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프롤로그 [prologue]
이번 제작하게 된 기획특집은 이재정 교육감이란 직책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자연인 이재정을 바라보는 필자의 눈으로 스케치를 했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그의 교육정책 또한 주옥같은 면이 많아 스토리텔링식으로 엮어 레포트 같은 형식의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으로 서술하기로 했다.
  
“2017년 1월 중순경, 지독히도 날씨가 매웠다. 오전 10시경 약속된 인터뷰로 경기도 교육청 이재정교육감을 만나러 갔을 때였다. 교육감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두고 있을 당시여서 나름 차기에 대한 이재정교육감의 준비상황도 궁금했고 근거리의 느낌을 어떨까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평시 경기도 교육정책이나 기타 브리핑자리가 있을 때 질문도 가끔 했었고 원거리에서 명쾌한 답변을 그의 코디스타일 만큼이나 명쾌하게 듣곤 했던 기억이 강했다.
장시간 이어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과 경기도의 열악한 재정과 인프라를 아쉬워한 기억이 아직까지 새롭다.
당시 이재정교육감을 인터뷰하면서 당시 문득 문득 오버랩이 되던 장면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에서 나오던 존 키딩선생역의 로빈 윌리암스도 생각났지만 강하게 오버랩이 된 건 그 영화를 만든 호주출신의 44년생 피터 위어(Peter Weir)감독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에서 1989년 N.H.클라인바움의 원작을 혁신성이 강했던 피터위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교육계의 불후의 명작영화다.
영화는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웰튼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해 온 국어 교사 존 키팅과 6명의 제자들이 오로지 명문대 입학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성세대의 획일적인 수업에 반대하며 벌어지는 감동스토리를 다룬 작품이다. 당시 사회에 미친 파장은 신선했고 이로 인해 세계교육계도 일부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을 당시 피터 위어 감독이 연출해 명작을 만들었다는 데 대해 필자는 상당한 경외심을 느끼기 까지 했다.
그리고 이재정 교육감이 44년생인 점을 감안하면 동갑내기 피터위어 감독과 지구 반대편에서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피터 위어 감독은 10년 후에 인간의 정체성과 상업주의의 악랄함을 다룬 불멸의 명작인 ‘트루먼쑈’라는 영화를 당시 코미디배우의 절정을 달리던 짐캐리와 호흡을 맞춰 영화사의 한 획을 긋기도 한 인물이었다.
정장캐쥬얼을 선호하던 두 사람의 스타일도 그런 연상을 떠올리기에 일조를 한 느낌도 들었다. 필자 생각엔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재정 교육감도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섰다면 반드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로의 교육감이 세련된 재킷에 청바지의 코디는 혁신적인 느낌마저 들었었다. 이런 기억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호흡이 느껴질 정도의 근거리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니 더욱더 그의 혁신적이며 파격적인 진가가 느껴지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당시 안산방송이 주선해서 진행된 인터뷰는 세월호 학생들의 애석한 죽음으로 인한 파장이 아직 우리 사회의 공기 속에 안개처럼 슬픔으로 자리하고 있던 시기라 당시 이재정교육감의 노란 리본이 마음을 살짝 아프게 하고 있던 기억이 책갈피처럼 남아있다.
1시간이 넘는 단독인터뷰 말미에 그가 했던 교육에 대한 명쾌한 정리가 평생의 기억 속에 담겨지는 명언이라고 생각되었다.
필자는 긴 인터뷰를 끝내며 흔히 인터뷰라면 그 상대의 직업적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필수이면서도 요식적인 느낌이 강해 물을 때 머쓱한 느낌이 흔히 들곤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정교육감이 내게 들려줬던 교육은 정의는 이랬다.
“저는 교육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생활 속에서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머릿속에 찌~잉 울릴 만한 발언을 했던 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엊그제 같이 기억된다.

“교육은 여전히 어렵다”

교육을 위해서는 공감대가 필수인데 각자 다른 입장인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게 너무 어렵다고 했다.
오히려 다른 게 자연스런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을 하게 되는 거고 일선교육을 맞고 있는 선생님과 교육계 리더들이 학교교육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 그러니까 입시부터 수능까지 관리와 출제 모두 국가가 통제한다며 이런 틀 속에서는 절대로 자유로운 생각이 나올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해서 외국의 교육의 롤 모델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은 교육제도가 우리보다 훨씬 경직 되었다고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주립대학 입학의 경우는 오로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게 지상의 목표라고 말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일전에 상영됐던 상류사회의 끔찍한 자녀교육 실태를 고발한 ‘스카이 캐슬’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고 했다. 자녀의 모든 것을 부모가 코디하며 자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모의 의지대로 만들어져 가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라고 개탄했다.

“이제는 혁신교육이 필요한 시기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의 일제방식교육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런 교육풍토가 관습적으로 이어지며 보편화 되는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여러 의식 있는 사람들이 현 교육현실을 고질적 병폐로 여겨졌지만 정부의 수출드라이브와 개발드라이브 정책속에 교육정책은 뒷전으로 밀린 채 특별한 대안이 없는 관계로 계속 적용되어오던 시기였다. 이에 이재정교육감은 이제는 대한민국 교육의 틀을 과감하게 바꾸는 혁신적인 교육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혁신교육의 일환으로 꿈의 학교를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경기 혁신교육은 학교문화와 교육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학교는 학생이 스스로 꿈꾸고 배우는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혁신학교는 2009년 13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664개교(초378교, 중217교, 고69교)로 50배이상 불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혁신학교로 가기 전 단계인 혁신공감학교가 1,684개교에 달해 혁신교육은 혁신지구로 확장되는 추세라고 했다. 경기도 31개 지자체 중 27개 지자체가 혁신교육지구에 참여중이며 이는 학교를 넘어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꿈의 학교 또한 매년 성장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 기획·운영하는 학교 밖 활동이라고 했다.
올해 꿈의학교 공모에 무려 2997개교가 지원 중이며 1878개교가 선정됐다고 했다. 이에 기부를 통한 꿈의학교(30개교)를 더하면 총 1908개의 꿈의 학교가 운영된다고 했다.
지난해 1,140개에 비해 60%의 성장을 이루며 참여 학생수가 3만9천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정 교육감은 ‘9시 등교’라는 것은 나의 원칙이며 혁신교육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9시 등교는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하나의 첫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며 9시 등교는 앞으로 꼭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자식을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딸 마음도 모르는 무지한 아빠였다”

이재정교육감은 자신이 자식을 아끼며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에 대해 일종의 미안함과 회한을 보였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녀교육은 부모가 자식의 적성을 잘 파악해서 자녀가 하고픈 일을 하게 도와주고 가고픈 길을 가게 해주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정교육감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학생들이 뭘 하고 싶은지 부모가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란 구절이다. 하지만 이재정교육감은 하나뿐인 자기 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선 필자가 생각하는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강요가 보여준 극단적인예가 있다. 대체적으로 이런 사연이다.

-“사회적으로 경쟁에 치중하는 부모는 아이의 인성과 적성보다 성적이 우선이다. 한 예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아침에 등교를 해야 하는 데 엄마와 딸의 의견에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어린 딸은 오늘 등교할 때 분홍색 원피스에 분홍색 신을 신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신발의 청결상태가 몹시 불량해 고민을 하며 등교를 망설일 때 엄마는 학교에 늦으면 수업에 지장이 생기고 학업성적에 영향을 줄 것이 우려돼 파란색 구두를 신교 등교하라고 달래다 어린 딸이 거부하며 투덜대자 결국 강압적으로 파란 구두를 신겨 등교시킨다.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어린 딸은 그날 수업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 엄마를 원망하며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결국 모든 수업을 망친 것이다. 이렇게 어린 딸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강요는 결국 자녀들의 반항심과 함께 현실적인 퇴보를 가져올 뿐이다.”

이재정교육감은 하나있는 딸을 무척 아꼈다고 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친구처럼 지내려 노력하고 꼼꼼하게 보살펴 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신은 딸이 인문학과 어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외고를 보냈지만 잘 적응이 안 돼 1년만에 자퇴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엔 딸이 영어에 소질이 있어 우리나라의 주옥같이 좋은 문학작품들을 번역해 노벨문화상을 받는 것에 일조하기를 바랬다고 했다. 그런 목적으로 보낸 외고는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학원같이 학생들을 교육시켰고 적성과 맞지 않는 커리큘럼과 제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딸은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일 딸의 재능이 미술 쪽에 있다는 것을 알고 늦게 미대입시를 보았으나 낙방했다며 딸에대해 미안함과 회한을 보였다. 그리고 당시성공회대 교수의 수입으로는 자녀의 미술교육이 어려웠다는 가정형편에 대한 아쉬움도 곁들였다. 
자녀에 대한 바람직한 교육은 자녀를 이해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재정 교육감의 “학생들이 뭘 하고 싶은지 부모가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정치인 이력이 교육감 직을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재정교육감은 남들이 흔히 하는 정치인출신의 교육감에 대한 염려와 불신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학생들도 반장선거나 의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 등 학교생활에서 벌어지는 전반적인 일들도 정치활동이라고 했다. 효율적인 교육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정책, 예산, 행정 등 여러 면에서 정치권을 움직여야한다고 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거의 정치에 의해 움직여 왔다. 정치와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교육도 정책이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에 정치가 교육을 정치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정치적인 독립성을 확실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고 했다. 교육정책도 정치지만 정당정치나 목적정치로 인해 교육정책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정치를 통한 교육정책이 성공하려면 그 정책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바람직하며 바닥으로부터의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생각과 위에서 내려오는 생각이 중간에서 만나 공감대가 형성되면 바람직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피력하면서도 때론 국가의 강제적인면도 필요하며 확고한 입장이 뒷  받침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학교민주주의를 위해선 학교가 학생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학생들도 그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활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먼저 학교가 그들에게 학교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길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달라진다고 했다. 학교민주주의의 바로미터는 학생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는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재정교육감이 의정부여중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대한 의제를 놓고 반별로 토의를 벌인 것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수학여행의 프로그램과 의제를 논의했다고 했다. 프로그램진행에 대해 주관을 학교가 반, 학생이 반을 주도하는 의견도 나왔고 수학여행을 가는 방법도 여러 각도로 논의 했다고 한다. 버스를 타느냐 전철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 학교는 학생들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고 했다. 이는 문재인정부가 주창하는 강력한 지방자치 중 가장 기초적인 ‘셀’로서 말단세표격인 ‘주민 주권구현’의 한 예다 
학교는 학생들이 이런 토의와 결정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것을 현실에서 용납하고 도와주는 게 교육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교육의 한 단서라도 만드는 게 앞으로의 꿈이다”

이재정교육감은 혁신학교가 미래학교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경기도가 시행하는 꿈의 학교가 미래학교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그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래교육을 잘 만들고 싶다며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한 미래교육을 준비해나가기 위해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3월1일자 조직개편으로 미래교육국을 신설해 학교 공간, 교육과정, 교육체계, 학교 운영 등 전반에 걸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미래시대에 필요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도전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성공과 실패가 한 과정처럼 대학의 불합격도 새로운 기회다”

부모들은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보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틈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서 자녀가 대학에 낙방하더라도 그 것은 또 다른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붙었을 때와 떨어졌을 때의 길은 다르다고 했다. 낙방 역시 새로운 길이라고 말했다.
불합격에 대해 실망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했다. 자신역시 대학에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만약 원하는 대학에 갔으면 지금의 자신이 없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인생은 큰 틀에서 보면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고 했다.
대학입시나 과정은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아 풍성한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이재정 교육감의 인생항로

이재정교육감은 1944년 3월1일(3·1절) 충청남도 입장이라는 지방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고향인 충북 진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가족이 서울로 올라와 경기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엄청난 수재였던 것 같다. 1962년엔 고향으로 내려가 관인 신명학원을 설립해 가정형편으로 중학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위해 무상으로 중등과정교육을 운영했다.
그리고 1965년 늦은 나이에 고려대학에 진학해 1969년에 문학사 학위를 땄다.
그 후 주변의 권유로 사제의 길로 들어서 1970년 성공회 성미가엘 신학원에 입학을 했다. 3년 후 그는 대한 성공회의 사제가 됐다.
얼마 후 발생한 유신을 계기로 민주화 투쟁에 뛰어 들었다. 한국기독학생총연맹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정의와 인권회복에 앞장섰다. 1973년 성공회 서울교구 본부에서 박영희(69)씨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재정교육감은 1982년 강화교회목회를 끝내고 캐나다 매니토바대학교 대학원,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딴 후 1988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4년에는 조희연, 신영복교수 등과 성공회 대학교를 설립해 초대총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1989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의회참석을 시작으로 워싱턴, 토론토, 동경 등지에서 열린 기독교계의 남북회담 한국대표로 참가하며 남북농업발전협력협의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8년 7월에는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외환위기로 양산된 노숙자들을 위한 사회복귀운동도 펼쳤으며 동년 8월에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이어 1999년5월에는 대통령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에 임명 되 6개월간 활동을 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사)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에도 선임되어 시민단체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그 해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으로 신당추진위원회 총무위원장직으로 2000년 새천년 민주당을 창당하여 초대 정책위원회 의장이란 중책을 지냈다.
그후 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교육위원회 간사로 교육개혁과 정치개혁에 기여하며 드디어 정치에서 교육분야를 맞게 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노무현후보 진영에서 경선과정부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유세연수본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시 총무위원장으로 새로운 정당창당의 중심역할을 하기 도 했다.
하지만 2004년에는 대선 당시 불법선거자금 전달이란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그해 10월 24일 대통령이 의장인 헌법기관 ‘민주통일자문위원회 수석 부의장을 맡아 2006년까지 평화통일운동을 대중화 시켰다.
그해 12월 11일에는 정부고위각료인 통일부장관에 임명되어 중단되었던 ‘남북장관급 회담’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당시 남북철도를 개통하며 열차시험운행을 비롯해 남북열차정기운행에 관한 실행을 위해 주무장관으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2007년 10월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준비 기획단장으로 발탁 회담의 전과정을 총괄 리드하며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이재정교육감이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남북관계가 가장 원활했던 시기로 이재정교육감의 활약은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 개성공업지구 활성화와 남북경협 확대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룩해냈다.
2008년 정권교체로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재정교육감은 노무현대통령의 취지를 이어 설립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2010년에는 국민참여당 초대 대표 등을 맡으며 새로운 정치개혁과 참여정치의 포문을 열었다.
그 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내다 2014년 경기도 교육감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2018년 재임으로 전국 최초로 9시등교를 실시해 파격적인 혁신교육으로 전국 교육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다.
현재는 미래교육을 위한 작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으며 미래교육의 일종인 꿈의 학교을 통해 혁신교육의 이정표를 제시하며 우리나라 교육계에 커다란 한 획을 긋고 있는 중이다.

●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어록

“교육은 어렵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생각이 다른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나의 틀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나서야 한다.”
“입시부터 교육의 모든 것이 국가의 틀 속에서 음직이고 있다. 이 속에서 자유로운 생각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모의 간섭이 지나치면 학생이 아니라 부모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상품일 뿐이다.”
“학교가 얼마나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달라진다.”
“학생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느냐가 학교민주주의에 중요한 부분이다.”
“정책의 성공은 바닥으로 부터의 공감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자율적인 것을 현실에서 용납하고, 도와주는 게 교육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정치란 생활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슬럼프란 열정이 사라졌을 때 오는 것이다” “나는 슬럼프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가르칠게 아니라 오히려 배워야 한다.“
“굳이 가르치려면 차라리 가리켜라”
“부모들이 힘든 세대다“ ”아이들은 더 힘들다”
“학생들이 뭘 하고 싶은지 부모가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

● 에필로그 [epilogue]

긴 대서사시를 쓴 느낌이다. 장문의 원고를 써내려 가면서 느낀 점은 이재정경기도 교육감이야 말로 이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합리적인 그의 사고와 창의성, 유연성을 겸비한 강직함, 논리적이며 해박하고 폭 넓은 지식, 그리고 정치분야의 다양한 경험 등이 모든 것을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정교육감은 어질기 까지했고 비쥬얼 또한 눈부셨다. 적당한 수식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필자는 그냥 그를 ‘작은 거인“리틀 자이언트(little giant)로 칭하기로 했다. 그냥 존경스럽다.
김동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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