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명예의 전당 인물사/ 수원화성의 이름을 되찾은 서지학자 故 이종학<하편>

 

이종학은 평생모은 사료를 후학들에게 아낌없이 기증해 자신의 뜻을 잇게 했다. 이종학이 평생 모은 자료들은 현재 독립기념관, 현충사, 독도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에 나누어 보관·전시되고 있다.
사료를 꼭 필요한 곳에 기증해 후학들의 교육·연구와 전시 홍보에 길을 터준 것이다.
그는 천안 독립기념관의 첫 기증자였다. 독립기념관이 개관을 준비 중이던 1983년에 경향신문 창간호(1906. 10. 19.)와 조선총독부 관보 제1호 및 호의  기증을 시작으로 ,대동여지도, 지도구역일람도 등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사료 총 4.000여 점을 기증했다. 1987년 9월 4일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었을 때, 이종학은 전날부터 노숙을 한 덕분에 독립기념관 1호 입장객이라는 이색 기록도 남겼다.
1997년 8월 울릉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이 문을 열었을 때 초대 관장으로 취임한 이종학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논박하는 책, 고지도 신문기사 등 30여 년 동안 모은 독도자료 351종(512점)을 기증했다. 독도박물관 개관당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90년 독도와 마주한 일본 시네마현에서 몇 달을 혼자 방을 얻어 살며 찾아낸 독도 자료들을 기증했다. 이 자료들로 독도에 대해 망상을 가진 일본인들을 꼼짝 못하게 한 것이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일이다.”

개관 초기 기증 자료를 포함해 그는 2001년 2월까지 독도박물관장으로 재임하면서 총 1.300점의 사료를 기증했다.
이종학 유족은 2004년 고서, 고문서, 관습조사보고서, 사진엽서, 지도 등 2만여 점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이종학 본인이 1996년 정조 대왕 및 충효 자료 전 전시 후 관련 자료 400여 점을 기증한 데 이어 , 2002년 이종학이 작고한 후에도 후손들은 수원시의 최대 사료기증자인 고인의 뜻을 이어갔던 것이다.
수원시에서는 그의 뜻을 이어갔던 것이다. 수원시에서는 그의 뜻을 기려 2008년 10월 1일 수원박물관내에 ‘사운 이종학 사료관’을 마련했다.
사운 이종학 사료관에는 일제 강점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에서 작성한 각종보고서, 조선풍속사진첩과 조선명소사진첩 등 7,000여 장의 당시 사진엽서뿐 아니라 당대의 지리적·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높은 국내외 고지도가 상당수 전시되었다. 수원박물관은 지난 2012년 이종학 타계 10주기를 맞아 ‘사운 이종학 끝내지 않은 전쟁’이라는 특별기획전을 열고 그의 평생업적을 집대성하여 전시와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사운연구소 간행 사업, 사학의 길을 제시하다

‘사학(史學)이란 것은 하나하나를 모으고 잘못 전하는 것을 바로 잡아서 과거 인류의 행동을 여실하게 그려내어 후세 사람들에게 끼쳐주는 것이니..’

사운 이종학이 생전에 즐겨 인용하던 신채호의 말이다. 이종학은 과거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평생 소명으로 삼았다. 그는 ‘역사가 천만년 누릴 정신의 옥토라면 지금 제대로 갈아야 한다.’며 ‘역사를 김매기 한다.’는 뜻으로 지은 자신의 호 ‘사운(史芸)을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이종학은 1996년 5월 서울 수운회관에서 사운연구소를 설립하고, 평생 연구한 충무공, 영토 주권, 일제 강점기 역사 사료를 집대성하는 간행사업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했다. 사운연구소는 설립 첫해에 역작 동학농민전쟁자료총서 총 30권을 완간했다.
앞서 1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으로 역사문제연구소가 총25권의 동학농민전쟁자료총서를 발행하려다 6책 발행 후 출판사의 경영난으로 중단 된 것을 이어받아 1996년 10월 총 30권으로 완간한 것이다. 이것은 정부나 공공연구기관이 해야 할 일을 작은 민간 연구소가 대신 한 셈이다.
이종학은 동학농민전쟁자료총서의 ‘총서 간행에 붙여’라는 글에서 ‘우리의 역사는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기도 하였지만 사료가 망실되거나 훼손되어 그 진정한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담았다. 그는 사운연구소를 통해 사료를 잘 발굴하고 후세에 전하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걸음이라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사운연구소는 설립 첫해에 동학농민전쟁자료총서 30권에 이어 1910년 한국강점자료집을 간행했다. 이어 2007년에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되는 화성성역의궤 영인본 200질을 앞서 복간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원성의 본래이름인 ‘화성(華城)’을 되찾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 1999~2000년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 조선통어사전(朝鮮通漁事情), 한일어업관련조사사료 등을 잇달아 발간해 동해의 명칭이 본래 ‘조선해’임을 뒷받침했다. 2000년에는 간도와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밝히는 자료집 통감부임시파출소기요, 일본의 독도청책 자료집을 각각 출간했다. 2001년에는 한일강제병합과정에서 일본이 기록한 중요 외교문서를 담은 조선심교시말, 일한병합시말을 펴냈다. 같은 해 평양에서 ‘일제의 조선강점의 비법성에 대한 북남공동자료전시회’를 개최하고 남북 역사학자들의 공동토론회를 열어 남북 역사 연구 교류의 물꼬를 튼 것도 이종학의 중요한 업적이다.
이종학은 사운연구소의 간행물들을 국내외 관련기관에 발송했다. 화성성역의궤 200점을 실물크기 원형에 가깝게 영인 제작해 국내 학술기관에 100질, 해외 정부, 도서관, 학술기관에 100질을 각각 기증했다. 특히 영어로 번역한 해제와 간행사를 첨부한 화성성역의궤를 1997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 보냄으로써 화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수원광교박물관의 사운 이종학실에는 국제 사법재판소와 프라하 국립도서관장 나탈리 코니치코바가 한국강점자료집을 받고 다음과 같은 감사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이종학 선생님, 한국강점자료집을 잘 받았습니다. 국립도서관의 자료를 한층 풍부하게 해주셔서 대단히 기쁩니다. 우리 도서관을 신회하셔서 이런 책을 보내주신 귀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운 이종학은 안타깝게도 2002년 4월부터 병이 깊어지면서 그해 10월 76세로 눈을 감았다. 와병 중에도 간도사진첩, 동학농민전쟁자료총서, 간도산업조사서, 특별조사동부간도 및 함경남북양도 등 자료집 간행을 준비했지만, 그의 작고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종학에 관련된 기사를 연재하면서 인연을 맺은 노형석 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는 그를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아도 꿋꿋이 한 길을 가는 ‘차돌맹이 학자‘로 기억한다.
이종학은 국내 제도권 역사학계에 거침없이 쓴 소리도 했다. 임시정부 활동과 독립운동 연구에만 치중하지 말고 임진왜란부터 식민지배, 독도 영유권주장까지 일본이 역사에 남긴 생채기부터 분명하게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독도문제에 뜨뜻미지근한 한국정부 에도 경고를 보냈다. 초대 독도박물관장 이종학은 1999년 한일 간의 신 어업협정 체결당시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분노하며 관장 사직서를 제출하는 초강경대응을 했다.
그는 독도박물관장에서 퇴임한 후 명예관장 시절 기고한 칼럼에서 ‘1965년 우리는 일본고 국교를 맺으면서 과거청산과 독도문제를 매듭짓지 못했고 1998년 신 한일협정을 체결하면서도 독도를 공동관리 수역 안에 넣는 등 어리석음을 반복했다’며 정부의 안일한 독도 대응 방식을 서릿발처럼 꾸짖는다.
 이종학은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노형석 기자는 “금전과 사생활을 바칠 각오로 뛰어들지 않으면 역사의 진실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평소 선생의 신념을 타계할 때까지 실천했다고 기억한다.
‘선생은 우리 역사의 밭에서 잡초를 솎아내기 위해 김매기에 매달린 30여 년간 수집과 조사비용으로 피땀 흘려 모은 숱한 땅과 재산을 처분했다. 자료집을 발간을 위해 많은 빚을 지기도 했고, 관계기관들에 진정하느라 쏟은 마음고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며 역사학계의 큰 산을 회고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이 호미 하나로 언젠가는 큰 산을 옮긴다고 했던가. 이종학은 평생 사명감을 갖고 고서와 사료 더미를 뒤지며 조선 후기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로 이어진 못난 돌멩이를 골라내고 역사를 옥토로 만드는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종학이 세상을 떠난 후 정부는 2003년 5월 30일 그의 공을 기려 ‘무궁화 훈장’ 국민훈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사운 이종학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도록, 수원박물관, 2012
노형석, 한겨례가 만난 사람, ‘역사의 텃 밭 김매는 게 내 직업’,한겨레신문, 2001.7.8.
독도박물관 http://www.dokdomuseum.go.kr
문화재청 현충사 http://hcs.go.kr
수원광교박물관 http://ggmusem.suwon.go.kr
수원박물관e아기블로그 https://swmuseum.blog.m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발췌요약 : 김동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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