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칼럼 /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전통을 올곧게 지키는 것은 예능인의 숙명과 같다. 수원의 대표적 무형문화유산 화성재인청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반갑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 승무와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송악 김복련이 그 주인공이다. 화성재인청의 복원을 위해 2003년부터 화성재인청보존회를 설립하여 춤의 맥을 이어가고 있어 다행이다. 또한 화홍문아래 자리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후학을 육성하고 있다.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예술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그런 믿음이 김복련에게 외길을 걷게 한 원동력이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한바탕 뒷풀이로 잊었고 끝난 후에는 다시 순수하게 좋은 작품을 이어가고 싶다는 열정만 남곤 했을 것이다.
 지난해 말 경기도문화의 전당 무대에 올린 ‘운학, 옥당을 만나다’라는 화성재인청 무용극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두 스승인 운학 이동안과 옥당 정경파의 춤 세계를 연극형식을 취해 유머러스하게 꾸민 작품이다. 독특한 배경설화를 가진 화성재인청류의 살풀이춤을 비롯해 신현숙의 승무, 화성재인청 진쇠무, 화성재인청류 신칼대신무, 한영숙류 태평무, 신영희 놀음판으로 펼쳐졌다. 좀 어딘가 어눌한 듯한 해설자의 입담이 일품이었다. ‘전통은 고루하다.’는 젊은 세대의 편견을 단박에 깨뜨리는 작품이었다. 경건한 움직임부터 신명 나는 디딤새와 역동적인 몸짓까지 다채롭게 담아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자아냈다.
 “우리나라 춤은 장단을 잘 알아야 하며, 가볍게 추거나 쓸데없이 돌거나 춤집을 인위적으로 꾸며서는 절대로 안 되고, 자연스럽게 추어야 하며, 무겁게 추어야 한다.”운학 이동안 옹의 말이다. 한국 춤의 특성을 잘 대변한 말이다. 발탈, 병신춤, 진쇠춤, 한량춤 등을 80여 평생을 소중하게 지켜왔다. 춤 이외에도 가창(歌唱)과 기악, 줄타기 등 다재다능했다. 조선의 마지막 광대다. 할아버지로부터 약관 14세에 화성재인청의 도대방직을 승계 받았다. 수원 화성권번에서 검무, 한량무, 승무 등을 가르쳤다. 대한국악원경기도지부장을 역임했다. 서울 문예회관에서 팔순기념으로 ‘이동안 춤판’ 공연이 열린데 이어 미수기념 공연 등 해마다 그의 공연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1906년 화성군 향남면에서 출생하여 1995년6월에 수원 경기도립의료원에서 천식으로 사망했다. 그는 평생 화성재인청의 예술을 전승하고자 화성재인청 복원에 혼신을 다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화성재인청 춤 맥이 옥당 정경파에 이어 송악 김복련으로 이어져 후학들에게 전수되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될 상 싶다. 운학 이동안의 춤은 역학적(力學的)인 안배가 잘 되어 있고 몸짓의 다양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예능 가운데 작은 한 부분인 ‘발탈’만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소중한 재인청계열의 춤을 비롯한 다양한 기예들이 별 가치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서 스승의 뜻을 이어가려는 송악 김복련과 제자백가의 춤 공연이 더욱 의미가 깊은 이유다. “재인청의 승무와 살풀이춤은 다정다감하며 부모와 스승에 대한 효의 춤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접신의 경지에서 천근만근 무겁게 추어야 한다.”운학 이동안의 제자인 옥당 정경파의 말이다. 재인청은 조선중기부터 각 도, 각 읍에 조직된 공연예술을 하나의 집단으로 공식적으로 담당하던 인재관리기구다. 전국에 산재한 재인청 가운데 화성재인청이 조선 최고의 기량을 가진 집단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단절됐다. 화성재인청 춤은 역사를 품은 수원의 문화콘텐츠다. 화성재인청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전통춤은 소명의식을 갖고 지켜나가야 한다. 이동안 춤의 화성재인청 계보 특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들이 민속무용을 말할 때 흔히 ‘구수하다, 텁텁하다, 해학적이다, 낙천적이고 풍자적이다’ 라는 말을 한다. 운학 이동안의 예술에서 이러한 특징이 짙게 나타난다. 전통예술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우리네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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