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더 다양한 봉사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어야죠”

한국곰두리봉사회 김현덕  회장
한국곰두리봉사회 김현덕  회장

문득 88올림픽이 떠올랐다. 귀여운 곰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뛰는 모습이 눈앞으로 스쳐간다. 한국곰두리봉사단체의 전국회장이라면 어떤 인물일까 궁금증을 안고 벤처벨리에 들어섰다. 우선 인상이 밝았다. 느낌이 좋다. 

그런데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이력에 비해 살아 온 과정이 몹시 전투적이었다. 에너지가 넘친다. 인상은 부드러운데 내공이 높다고 할까!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경기첨단인쇄디자인센터 대표이사이기도 했다. 경기도의 인쇄문화를 바꾼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쇄라는 특정분야에서 저 정도의 진취적 기상과 열정이 오늘을 이끌어냈다고 보인다. 그리고 장애인권익을 위해 정치적 활동도 계획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봉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바위처럼 굳건해 보인다. 이런 인물들이 있어 세상이 살만해지는구나라는 느낌으로 훈훈한 덕담이 시작됐다.


▲ 김현덕 회장님이 걸어 온 길은?
-저는 어려서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살았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내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다른 사람과 뒤진다고 생각한 것은 달리기 정도... 막상 취업문을 두드렸을 때 좌절했죠. 면접만 보면 “연락주겠다”는 말만 10여 곳에서 들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하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이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장애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다’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요.

법학을 공부했기에 졸업 후 1년을 더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공부를 안한 탓인지 합격은 안되더라구요. 취업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제가 장애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무렵 나를 돌아보게 됐죠.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푸대접을 타파하는데 참여하고 싶었어요. 마침 봉사단체를 준비하던 분들과 연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창립멤버로 참여하고 열심히 봉사했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기를 31년이 되었습니다.


▲ 한국곰두리봉사회란?
-한국곰두리봉사회는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곰두리차량봉사대라는 명칭으로 출발했지요. 그 당시 장애인 중에 자가용을 가지신 분들이 주축이 되어 수혜자의 입장에서 봉사자의 입장으로 장애인의 이동을 돕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된거죠.

이런 뜻이 하나가 되어 서울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을 경기장과 경기장을 또는 경기장과 숙소를 이동하는데 편의제공을 한 것이 곰두리봉사회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참여폭이 넓어져 장애인만이 아닌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봉사단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현재는 모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봉사를 실천하고 있으며 소외된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등 국민의식개혁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있고 이러한 우리 봉사회의 이념과 목적은 한발 앞선 복지를 실천하는 것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 한국곰두리봉사회의 주요 활동은?
-우리 봉사회가 올해로 창립 된지 31년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차량을 이용한 봉사로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전국장애인기능대회, 수능시험생 차량봉사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숙인들에게 점심식사도 드리고, 취약계층을 위한 빨래봉사 및 목욕봉사, 김치담구어 나눠주기, 요양원이나 장애인시설을 찾아 이·미용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봉사가 계기가 되어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어촌진흥공사가 주관하는 농촌재능기부사업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부터 용인시 처인구 길업마을을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 이·미용봉사와 소독방역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원되고 싶습니다.


▲ 한국곰두리봉사회가 이룬 업적들이 있다면?
-첫째는 30년을 장애인이동봉사에 매진했다는 과업과 이를 계기로 전국의 장애인콜센터가 설립되는 역할을 했습니다.

둘째는 한국에이블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새로운 미래 30년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들이 우리 봉사회가 이룬 업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한국곰두리봉사회가 시나 도에 바라는 점은?
-현대에 들어와 자원봉사자들의 역할과 성과는 어느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시민사회에서는 많은 부분들을 담당하고 있다.

이쯤해서 자원봉사자들의 예우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각종 궂은 일은 다함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의 인권존중은 뒤떨어져 있지 않나 생각하며,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처우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시나 도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자원봉사의 3대 원칙인 무보수성, 자발성, 지속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물질만능시대에 살다보니 무보수성과 자발성이 떨어져 자그마한 물질적인 것을 원하는 실정이라 하겠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미덕이 발휘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나는 앞으로도 지역사회 그리고 온정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특히 장애인의 복지와 인권을 위한 일을 끊임없이 하려고 한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보다는 사람들과 조금씩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죽기 직전에 어떠한 후회를 할지, 만족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과정을 끝까지 쉬지 않는 것, 봉사활동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지속하렵니다.


▲ 회장님의 좌우명은?
-지난해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자원봉사자의 날’에 대통령표창까지 받았다. 한 해에 두 건이나 나라에서 주는 큰 상을 받는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 흔치 않을 터입니다. 봉사를 했다고 주는 상이라고 하지만 나 혼자서 얻은 결과가 아니기에 회원들에 대한 미안함도 컸습니다. 봉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받을 수 없는 상이기도 하므로 모든 감사를 함께 동거 동락한 봉사단 회원들에게 보냅니다.

방귀를 뀌면 냄새가 퍼진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현상입니다. 냄새로 내 주변 사람들은 방귀의 진원지를 알게 된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것을 ‘봉사방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방귀를 뀌면 독소가 배출되면서 몸은 건강해집니다. 나는 봉사를 타인에게 나눔을 전하는 ‘마음방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봉사는 더욱 확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건강해지고, 상대방도 건강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글을 쓰면서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 홀로 죽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고, 사회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일원이 되어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 지식이 사람을 바꾸어 놓지 않습니다. 앎과 지식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가슴과 머리가 조화로운 사람이 세상에서 더욱 쓸모 있습니다. 바로 세월이 흘러간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혜민스민의 책 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입니다. 시작은 나와 상관없이 시작되었어도 인연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가는 나 자신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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