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칼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박물관을 놓는 것은 도시지만, 나중에는 박물관이 도시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박물관을 보면 그 나라, 그 도시의 과거를 알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은 수원의 컬처코드(culture code)다. 올해 개관 10년을 맞은 수원박물관이 ‘수원박물관 명품전’을 열고 있다. 그간 30여회의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을 펼쳐왔다. 해마다 10만 여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이 찾았다. 지난해에는 문화체육부 공립박물관 평가에서 ‘우수박물관’으로 선정됐다. 짧은 기간에 박유명 초상화, 영조 어필, 박태유 서첩 등 보물 3점을 비롯해 5만여 점을 소장하는 명품박물관으로 발돋움했다.


박유명은 인조반정에 참여한 무관으로 오사모에 구름무늬가 없는 단령을 입은 채 공수(拱手)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17세기 공신상(功臣像)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명필로 알려진 박태유의 서첩에는 안진경 서풍이 잘 드러나고 ‘해서, 행초서, 광초서, 예서, 행서’가 두루 실려 있어 여러 서체를 배운 그의 학서적인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영조어필은 영조가 쓴 어제어필 12점을 모은 첩(帖)이다. 임금이 쓴 어필은 존숭(尊崇)의 대상으로 보배로 간직됐다. 수원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을 꾸준히 수집했다. 영조와 정조 관련 유물은 어느 박물관과 비교해 봐도 가치가 높은 유물로 수원박물관의 대표적인 수집품이다.


이번에 수원시가 큰일을 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이 소장한 한글본 ‘정리의궤(整理儀軌)’ 13책 복제본을 제작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2년3개월 동안 끈질긴 프랑스 기관을 설득해 빚어낸 산물이다. 당시 외규장각 의궤 반환으로 문화재 환수에 민감한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는데 어려움도 많았다. 200여 년간 이역만리 타국에서 잠자던 수원화성의 속살을 품고 있던 귀중한 자료가 후손들의 손에 의해 눈을 뜨게 한 실로 감회가 깊은 일이다. 프랑스를 오가며 교섭하고 촬영하고 실측한 전문가와 관련 공직자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야 마땅하다. 특히 채색본 모사 작가, 한지 장인, 표지 염색자, 책 제본가 등 무형문화재 전문가들이 총동원된 작업이다. 물론 염태영 시장의 강한 집념이 뒷받침 된 또 하나의 수원의 역사문화의 결과물이다. 염 시장은 “정조시대와 수원화성 연구에 큰 힘이 될 한글본 정리의궤가 우리 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발견되고 복제돼 기쁘다”면서 “한글본 정리의궤가 문화콘텐츠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찬란한 과거를 미래 자원으로 동원해야 한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실천동력이기 때문이다.


복제된 한글본 정리의궤의 원래 이름은 ‘덩니의궤’로서 ‘현릉원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등을 한글로 종합 정리한 의궤다. 국내에 없는 판본이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화성관련 자료다. 현재 남아있는 한글의궤 가운데서 가장 빠른 연대의 의궤로 알려지고 있다. 총 48책 중 13책만 남아 있고, 그 중 12책이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채색본 ‘정리의궤 성역도39’는 화성행궁도 등 수원화성 주요시설물과 행사 관련 채색그림 43장, 한글로 적은 축성 주요 일지 12장 등 총 55장으로 짜여 져 있다. ‘정리의궤 성역도39’에는 화성성역의궤에 없는 봉수당도(圖), 당낙당도, 복내당도,유여택도, 낙남헌도, 동장대사열도 등이 수록돼 있어 가치가 그만큼 크다.


왕실의 기록문화뿐 아니라 당시 한글 언어생활까지 살필 수 있는 귀한 문헌이다. 정리의궤 복제를 통해 프랑스 관계자들에게 한글본 ‘정리의궤’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 학술적 가치를 알려주는 계기가 돼 일석이조의 문화적 효과도 거둔 쾌거다. 정리의궤 복제본이 오는 12월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 특별기획전 ‘수원의 궁궐, 화성행궁’이라는 제하(題下)로 공개되고 있다. 역사는 해석의 영역이다. 수원박물관 10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귀한 자료인 만큼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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