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칼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책 한 페이지, 꿈 한 걸음’ 올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뽑은 독서의 달 표어다. 책을 읽으면 꿈이 이뤄진다는 뜻이 숨어 있다. 정부가 정한 책의 해다. 인문학도시 수원시다. 다른 도시와 달리 수원시민은 얼마나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지 통계가 없어 가늠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도서관사업소에서는 시민의 독서률을 계량화하여 해마다 발표해 시민에게 책읽기를 생활화하도록 권장 할 필요가 있기에 그렇다. 독서력이 없으면 사고력도 길러지지 않는다. 인문학 도시는 그냥 구호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까닭은 늘 책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뭘까. 문사철(文史哲)이다. 즉 문학,역사,철학을 일컫는다. 이들을 알면 끝없이 변화하는 만화경(萬華鏡)같은 인간의 모습과 심리를 있는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평생의 재산이다. 양서(良書)는 고전이라고 해도 색이 바래지지 않는다. 책과 벗하는 시민은 강하다. 동서고금의 정신적 보물을 자유자재로 맛보고 끄집어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생의 동맥이다. 평생 책을 마음속에 넣어둔 시민은 동맥에 신선한 혈액이 맥동하는 듯하다. 아무리 인테넷, 영상의 시대고 활자 이탈의 시대라고 해도 진지하게 책과 벗하지 않는 인생은 참으로 초라하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책과 친숙한 습관을 들인다면, 먼 훗날까지 그 가치가 헤아릴 수 없는 재산이 된다. 


훌륭한 책과의 만남을 소중히 해야 한다. ‘황금 같은 말’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세계는 넓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마음의 세계는 더욱 넓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인생의 드라마를 쓰는 각본가요 주인공이다. 신(神)이 써 주는 것도 아니고 우연히 써지는 것도 아니다. 다른 그 누구도 각본을 대신 써 주지 않는다. 자기가 써서 자기가 명배우로서 연기한다. 누구 탓도 할 수 없다. 선인(先人)들의 고투가 있었기에 역사는 만들어졌다. 책은 뜻을 이루게 한다. 뜻을 가리키는 한자의 지(志)는 혼의 영양이다.


독서는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높은 산도, 낮은 산도 있다. 높은 산에 오르면 힘들다. 그 대신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동은 크다. 시야도 크게 열린다. 저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의 일생은 한번뿐이지만 책을 통해 몇 백, 몇 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 아주 오랜 현자(賢者)와도 대화할 수 있다. 이런 기쁨을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읽는 척, 읽어본 척하면 안 된다. 또한 독서는 여행과 같다. 동서남북으로 가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시간의 제약도 없이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얼굴 표정까지 달라진다. 안타깝게도 인류의 영지는 아직도 인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 도시 수원시의 정체성을 올곧게 세우기 위해서도 시민들의 책읽기는 필요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근육을 키운다. 이것이 쌓이면 정해진 운명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지루하고 힘들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찾아 읽어야 한다. 운동선수들도 매일 운동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자기기량을 100% 발휘해 좋은 스코어로 승리했을 때 맞는 환희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운동이 좋은 근육을 만들듯이 책을 통해 생각의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자꾸 읽다 보면 지식의 거름망이 촘촘해진다. 위대한 현인들의 생각을 읽으면 내 삶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내가 가진 편견, 고정관념을 깨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여겨졌던 것들을 깨고 새로운 관점과 또 다른 시각을 던져주는 도끼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가까이 하여 내면을 비옥하게 만드는데 좋은 절기다. 20개의 도서관이 집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인문학 도시 수원시민의 자부심을 갖고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가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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