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칼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시선을 돌리면 활자가 넘쳐난다. 책은 지혜의 보물이다. 모든 보물을 다 캘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번갈아 가며 파고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한다. 글을 읽을 때는 푹 익게 하는 것이 으뜸이다. 책은 읽는 이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 준다.


 지난주에 행궁광장에서 ‘온 나라 지역책들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작년 제주에 이은 두 번째 지역책 잔치였다. 지역출판사가 아니면 얼굴을 내밀 수 없는 책들이 독자의 시선을 끌었다. 지역의 빛깔을 담은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역 있다, 책 잇다’가 주제였다. 책을 매개로 사람과 지역을 잇고, 지역출판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선언문 같은 주제다.


“기록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문화의 실체를 증거 한다. 그리고 역사가 돼 이어진다. 인류가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록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우리 모두의 의무다” 책 잔치를 펼친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황풍년 대표의 말이다. 기록은 기록관 안에 박제(剝製)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출판을 통한 기록의 사회화는 가장 좋은 기록의 공유방식이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사라진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출판인들이 손잡은 한국지역문화잡지연대가 태동한 이유일 듯하다. 개발과 효율이라는 가치에 의해 빠르게 사라져가는 우리 주변의 모습과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동체아카이브를 실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조직의 전국화가 절실하다. 모든 지역의 다양한 삶과 문화가 기록되고 역사로 되물림 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한 ‘책의 해’에 펼쳐진 공간에 중앙부처의 공직자 한 사람도 얼굴을 내밀지 않아 씁쓸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도서전을 찾아 지역출판인들을 격려해 줌으로써 ‘온 나라 지역책들의 한마당’의 무게를 한껏 높여줘 다행이었다. 행사 마지막 날 열린 1,000인의 독자가 1만원씩 출연해 만든 상금으로 수여하는 지역출판대상인 ‘천인(千人)독자상’ 시상식은 책잔치의 백미(白眉)였다. 좋은 지역 출판물을 격려하는 상으로 뜻이 자못 컸다. 역사는 기록의 연속이며 산물이다. 잊혀짐에 대한 아쉬움과 잇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진다. 그것이 내팽개쳐지면 버려진다. 기록은 오늘을 쓰고 내일을 그릴 수 있는 무디지만 튼튼한 펜이 돼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참여한 지역책들의 발행인이나 편집자의 목소리가 도서전을 찾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지역시대다. 지역이 희망을 만들려면 이곳저곳에서 다양함 움직임이 필요하다. 여러 시도 중 하나가 지역잡지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쉽지 않을지언정 현실보다는 당위를 택했다는 월간옥이네 장재원 대표의 말이 울림을 증폭시켰다.


우리가 사는 공간과 그 위에 펼쳐진 삶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것이 어디건 누구건 소중하다. 이런 생각을 바탕을 두고 태어난 ‘대전여지도’. 도시 구석구석을 다니며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간에 스며들어 그 공간 안에 녹아 있는 시간의 틈을 들춰내며 발견하려 했던 것은 ‘숨결’이라는 월간 토마토 이용원 편집장의 말, 그 또한 긴 여운을 갖게 한다.


잡지를 매개로 사람을 모으고 그 모인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 만들어내고 싶었다. 잡지를 펴내고 구독자는 읽거나 보는 단순한 관계를 뛰어 넘어 함께 교감하며 일상적 감동이 꿈틀대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는 어느 발행인의 말에 깊은 뜻이 박혀 있다. 지역문화의 저장고를 꿈꾸며 문화의 기록자가 되겠다고 나선 용기와 도전. 이 모두가 다양한 지역책들의 얼굴이다. 책의 해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왜 지역출판이 중요한지’를 확실히 각인(刻印)시킨 성공적인 도서전이었다. 지역출판이 담아내는 지역아카이빙의 최종 결과물은 책이기에 그렇다. 지역출판은 그 자체로 지역문화의 아카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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